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9.11.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6-09-11 조회수1,331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24 주일(루가 15,1-32)

 

    연중 24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의 주제는 하느님의 자비라 할 수 있습니다.

 

    <1독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하여 하느님의 분노를 샀지만, 선조들과의 언약을 상기시키며 드리는 모세의 간절한 간청으로 재앙을 거두시는 하느님의 자비 전해주고 있습니다.

 

    <2독서>에서는 바오로가 교회를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했던 자신에게 베풀어진 하느님의 자비를 찬양하면서,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시요 하느님의 자비를 전해주신 분으로 고백하며 감사드리는 장면입니다.

 

    <복음>에서는 세 개의 비유를 통해, 길 잃은 양을 찾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하느님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밝혀줍니다.

    특히 세 번째의 비유인 자비로우신 아버지와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는 하느님의 기쁨이 되는 회개에 대해서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작은 아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루카 10,18)

 

    참으로 벅찬 아름다움입니다. 죽어서 눕혀진 채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을 때 일어나 아버지께 가는 것이기에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출세해서 성공하여 가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러 가는 것이기에 더더욱 아름답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죄지었었음에 대해 뉘우치고 통탄해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죄로부터 일어나 아버지께 돌아가는 행위 속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회개는 뉘우침이라는 내면적인 통회와 돌아옴이라는 외면적인 행동을 요청한다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베드로와 가리옷 유다가 다 같이 스승을 배반하고 통탄해 했지만, 베드로는 예수님께 돌아와 구원의 길을 갔고 유다는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파멸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서, 뉘우친 바를 행동으로 고백하는 일,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바로 이 일을 두고,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단지 뉘우치는 것만을 넘어,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행동을 넘어, 또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데에 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당신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요, 자신을 버리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곧 양들을 맡기신 아버지께 대한 충실이요, 드락메를 결혼의 징표로 주신 신랑이신 예수님께 대한 신의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또 하나의 주제는 죄인을 끝까지 찾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신뢰와 사랑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헤세드인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신실하심과 충실하심과 무한하신 자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멈추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죄인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치 전부인 양 소중히 여기시는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입니다.

    바로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이 오늘 <복음>에서는 잃은 양을 찾아낼 때까지 뒤쫓아 다니는 목자의 사랑이요, 잃은 드락메를 찾아낼 때까지 샅샅이 뒤지는 여인의 사랑이요,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이 처럼, 하느님의 사랑은 먼저찾아오시고, ‘끝까지찾으시고 신실하십니다. 이는 구원의 주체가 바로 당신이심과 당신의 사랑을 말해줍니다.

 

    사실, 유산을 챙겨 집을 떠나는 아들을 떠나보내는 아버지는 그 아들이 방종으로 유산을 다 탕진하리라는 것을 훤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허비할 때에도, 그에게서 결코 신뢰를 거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니, 바로 그처럼, 당신을 거부하고 배신할 때마저도, 결코 그에게서 희망을 거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 미리 마련해 두었던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워주고, 신발을 신겨줍니다’(루카 10,20-22 참조).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사실, 우리는 바로 이 아름다운 장면의 주인공들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저희가 이 자리에 이렇게 있을 수 있음은 바로 당신께서 저희에게서 희망을 거두지 않으신 까닭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온갖 죄와 허물과 탓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마저도, 결코 저희에게서 신뢰를 거두지 않으신 까닭입니다. 단지 죄를 용서하신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 죄를 덮어주고 가려주고 보호해 주신 까닭입니다. 아버지께서는 결코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결코 희망을 거두지 않으신 까닭입니다.

    그것은 우리도 그렇게 용서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단지 용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지켜주고 보살펴주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에게서 결코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뜻일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하시듯이, 우리도 형제들을 먼저 사랑하고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에게서 결코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요,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요, 결코 사랑을 거두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의 노래 불러 봅니다.

    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리라.

    가서,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고 말하리라.

    아버지와 함께 형제들을 믿는다고, 희망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리라.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