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6-09-13 조회수1,652 추천수11 반대(0)

설교학강의를 6년 동안 하고 있습니다. 강론은 사제의 삶에도 중요하고, 신자들과 만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님은 설교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오늘은 수업시간에 강조하는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강론에는 4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입니다. 음식을 요리하는 데는 재료가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강론의 재료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전례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만나게 됩니다. 복음은 세상을 살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독서는 삶의 자리에서 실천해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좋은 강론은 말씀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합니다. 말씀이 없는 강론은 재료 없이 양념으로만 요리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두 번째는 시대의 징표입니다. 요리사는 재료에 따라서 방법을 달리하기 마련입니다. 어떤 것은 기름에 튀기기도 하고, 어떤 것은 간을 세게 하기도 합니다. 어떤 것은 뜨거운 물에 데쳐서 양념을 섞어 가볍게 무쳐내기도 합니다. 시대의 징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독서를 해야 합니다. 신문의 사설과 칼럼을 읽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숨은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공동체의 고민과 바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사제는 샘이 깊은 물과 같아서 진리와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와 같아서 유혹과 갈등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몸의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고, 음식 조절을 하고, 병원을 찾듯이,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제는 언제나 겸손하기 마련입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는 삶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라고 이야기하기보다는 본인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권위는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희생과 나눔의 삶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기적과 능력은 십자가라는 뿌리에서 피어난 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의사여 당신의 병이나 고치십시오.’ 이 말씀은 삶이 따르지 않는 사제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강론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세가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쉼표입니다. 가수는 노래를 할 때 악보를 보게 됩니다. 악보는 반드시 쉼표가 있습니다.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서, 숨을 고르기 위해서 쉼표가 있는 것입니다. 말에는 띄어쓰기가 필요하듯이, 강론을 하면서 지켜야 할 것은 쉼표입니다. 사제의 강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여유입니다. 신자들은 사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이 사제의 강론을 듣기 때문입니다. 평소 말하는 것보다 조금 느리게 강론을 하면 좋습니다. 무대에 서는 배우는 대사는 물론 감정까지도 완벽하게 소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여유는 연습과 준비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사제는 강론을 장악해야 합니다. 긴 강론은 몸을 움직이게 하고, 짧은 강론은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고 합니다. 사제들의 강론이 신자들에게 위로를 주고, 용기를 주고,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비로운 마음을 이야기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장례행렬을 보셨습니다. 슬픔에 찬 가족들을 보았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주시려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주시려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어둠에 빛을 주시려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아이의 엄마는 모든 신경이 아이에게 향해 있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배고 고픈지, 옷에 실례를 했는지, 자고 싶은지 알고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저는 아이가 왜 우는지 모릅니다. 엄마만큼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 병든 이, 헐벗은 이, 외로운 이, 슬픔 중에 있는 이들에게 모든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자비의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은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