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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9.1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9-16 조회수1,369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6년 9월 16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1코린 15,12-20

형제 여러분,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이렇게 선포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13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14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15 우리는 또 하느님의

거짓 증인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죽은 이들이 정말로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되살리지

않으셨을 터인데도,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되살리셨다고 우리가

하느님을 거슬러 증언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16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17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

18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이들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19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복음 루카 8,1-3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2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3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어느 신부님의

차를 탈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에 타자마자

신부님께서는 주유를 하고

가겠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리고 주유소를 찾아가는데

성당에서 한참 떨어진 곳을

 가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주유소는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의

정반대이기도 했습니다.

왜 이 주유소를 찾았을까요?

다른 주유소보다 리터당 10원이

더 싸다는 이유더군요.

여기에 차 무게가 무거워서 기름을

 많이 먹는다고 주유도 절반만 합니다.
기름도 나오지 않은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당연히 절약을 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솔직히 절약을 한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30리터 정도 넣었으니 성당 앞

 주유소보다 300원 절약했습니다.

그러나 이동한 거리를 생각해보면

300원 이상을 더 쓴 것 같습니다.
실제로 종종

이런 분들을 많은 것 같습니다.

 본인은 절약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따지면 절약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신부님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계속된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싼 주유소를 알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차를 통해 절약하는 방법을 많이

 알고 계시더군요.

브레이크를 한 번 밟을 때마다

거의 50원씩 든다면서 가능한 한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에어컨 켜는 것도 기름이 많이

소비된다면서 에어컨을 켜지 않습니다.

그런데 창문을 열면 공기저항이

생긴다며 창문도 열지 못하게 합니다.
누군가는 꼭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야 하느냐고 불편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끼며 사시는

신부님이기에 사목활동

 안에서도 허투루 낭비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돈만

모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필요할 때에는 아낌없이 쓰면서

참으로 많은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던

몇몇 여인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에 대해 복음은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당시에는 여성의 지위를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대단한 행동을 해도

인정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복음에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웬만한 남자들보다 훨씬 더 대단한

봉사와 나눔을

 실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노력들이 주님의 활동을 도왔고,

주님의 기쁜 소식이 세상 끝까지

전파되는데 커다란 힘이 된 것입니다.
앞서 신부님께서 낭비하지 않고

 절약하면서 주님의 일을 해 나가고

있는 것처럼, 또한 복음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노력들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자기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의 기쁜 소식은 누구 한 명의

노력만으로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해야 가능합니다.

누군가 변함없이 곁에

머물러 준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낼 이유는 충분하다.

매일 안부를 묻고 일상을

살펴 주는 가족처럼,

한 결 같이 객석을 지켜 주는

 관객이 있는

우리의 인생은

그래서 아름답다.

(위서현)

 성지 앞 도로에서 바라본 석양.

정확히 결심하기

(에밀리, ‘행복에 관한 연구’ 중에서)

 책을 읽다가 공감가는 구절이

있어서 그대로 옮겨 봅니다.
“가장 첫 번째는

자신이 무엇이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결심하는 것이다.

결심은 행복의 전제조건이며

 결심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다.

결심이 없으면 계속해서

불확실성의 바다에서

헤엄치게 될 뿐이며,

저녁에 이룬 일을 다음날

아침에 파괴하여

다시 바로잡느라,

또는 후회하느라 일생을

어리석게 낭비하게 된다.

이 후회의 감정은 우리 영혼이

 느끼는 감정 중에서도

 가장 아프고 불쾌한 것이다.”
결심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에

큰 공감을 하게 됩니다.

결심은 하지 않고 막연한

바람만을 외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돈이 많았으면,

승진을 했으면,

자식들이 성공했으면...

이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결심이 빠진

상태에서 바라는 것들은

 결국은 쓸데없는

공상으로 그쳐질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정확한 결심은 무엇일까요?

이제 가을맞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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