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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9.2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9-20 조회수1,485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6년 9월 20일

성 김대건 사제와

성 정하상과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제1독서 지혜 3,1-9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제2독서 로마 8,31ㄴ-39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복음 루카 9,23-26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오늘은 드디어 갑곶순교성지에서

순교자 현양 대회가 있는 날입니다.

이 순교자 현양 대회를 준비하면서

 많이 힘들더군요.

더군다나 모든 행사 준비를

누구의 도움 없이 갑곶성지에서

독자적으로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쉽게 생각하려고 해도

걱정이 많아지더군요.

특히 행사를 하루 앞둔 어제는

이제 어느 정도는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도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저녁에는

완전히 녹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힘들다고 해서

그냥 포기하면 될까요?

마치 어렸을 때 오래달리기를

하다가 힘이 들어서 뛰던 것을

걷게 되고, 더 시간이 지나서는

아예 천천히 걷던 모습처럼

래서 포기하려고 했던 모습처럼

힘들어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순교자 현양 대회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우선 그렇게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순교자 현양대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봐서라도 행사를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모든 행사가 끝난 뒤에 얻게 되는

 기쁨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역시 안 됩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그런데도 이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것은 분명히 신나게

내려올 내리막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뒤에 있을 기쁨이 있기 때문에

포기는 절대로

안 될 말이라는 것이지요.
어쩌면 그리스도인이란

뒤에 있을 기쁨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기쁨을 얻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주님의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아닐까요?

바로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한 순간의 삶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의 기쁨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생명까지도

주님을 위해서

포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과거 우리 순교자들이 만약

한 순간의 기쁨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는 순교를

선택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순교의 순간은 너무나 힘들겠지만,

하느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생명을

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순교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느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참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해 봅니다.

 지금 한 순간의 기쁨만을 바라보기에

내게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을 피하고

포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지금 편하고 쉬운 자리,

지금 영광을 얻는 자리를

추구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요?

어떠한 순간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

 뒤에 있을 기쁨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간직하며 살아야 합니다.

 

고통을 겪고 나면

인생과 친구와 자신을

재발견하는 행복이

다가오는 법이다.

(해럴드 블룸필드)

갑곶성지에 있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유해.

바닥짐.

바닥짐(Ballast)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며

항해할 수 있도록 배의 바닥에 싣는

돌이나 모래, 물 등을 말합니다.

그래서 거친 파도와 비바람을

 만나서 이리저리 배가 흔들릴 때,

 이 바닥짐이 배의 중심을

잡아주어서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바닥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좌초되지 않고

 앞으로 쭉쭉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바닥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바닥짐의

재료들을 보십시오.

엄청난 무게로 배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바닥짐이 항해를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적인 도구가 됩니다.
우리 삶 안에서의 고통과

시련이 바로

바닥짐이 아니었을까요?

이 바닥짐을 포기하고 버리려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바닥짐이 있어야 배가 좌초되지 않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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