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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20: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6-09-20 조회수1,316 추천수1 반대(0) 신고

 

 

루카 9,23-26(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 천주교회의 103위 성인대축일 입니다.

    먼저, 198456일 시성식 때,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하신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자 약전을 요약하여 들려드립니다.

 

 모든 민족들의 구원을 원하시는 천주께서는 200년 전에 이 땅에 기묘히 천주교 신앙을 심으시어, 자라 꽃피게 해 주셨습니다.

 1886년에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기까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기꺼이 죽음을 당하신 스승, 그리스도를 닮아 피를 흘린 제자들은”(교회헌장 42)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중 11위의 성직자와 92위의 평신도, 모두 103위께서 오늘 시성되는 것입니다.

 정하상 바오로,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조신철 가롤로 등은 신유박해 이후 목자 없는 신자 공동체를 돌보며 선교사 영입의 길을 찾으려고 수없이 북경을 왕래했고, 마침내 파리외방전교회 주교, 신부들을 맞아들여 한국교회 발전의 새 장을 열어 놓았습니다.

 라우렌시오 범주교를 비롯하여 10위의 불란서 선교사들이 하느님 사랑 때문에 문화와 풍습이 다른 이 땅을 찾아와, 낮에는 숨어있고 밤에는 걸어서 방방곡곡 교우들을 방문하고 성사를 베풀며, 사랑을 실천으로 가르쳤습니다.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천주께 대한 믿음과 교우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불가능을 가능케 하여 선교사 영입의 새로운 길을 열어놓고, 사제서품 11개월 만에 한강변 새남터에서 26세의 꽃다운 나이에 칼 아래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갈림 없는 마음으로 주님만을 사랑한 김효주 아녜스와 효임 골롬바 자매를 비롯한 15위 동정녀 중 몇 분은 아직 수도생활이 알려지지 않았던 그 당시에 이미 공동생활을 하면서 병자와 가난한 이웃을 돌보았고, 이광렬 요한은 교회에 봉사하기 위하여 독신으로 지내다가 순교하였습니다.

 남명혁 다미아노와 이연희 마리아 부부를 위시하여 모범적 가정을 꾸몄던 여러 부부 순교자,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도 정의와 정결과 가난의 모범을 보여주신 남종삼 요한, 박해로 부친을 잃고 재산까지 몰수당하고서 짚신과 미투리를 삼으며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언제나 기쁨 속에 살던 박후재 요한, 틈틈이 묵상에 전념하던 권득인 베드로, 교리는 잘 몰라도 천주님과 성모님을 사랑하며 자신을 온전히 봉헌한 박아기 안나, 13세의 어린 나이에 용감히 신앙을 고백한 유대철 베드로도 특기해야 할 분들입니다.”

 

    사실, 그 시대의 법은 당시에 자행되던 부정부패와 약자에 대한 횡포를 방관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조장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리스도 신앙은 그들에게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을 것입니다. 곧 그들에게 하느님의 질서, 곧 정의와 자비와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그 시대의 당시 인간과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부조리를 한 순간에 걷어내는 기적과 같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주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바로 이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그들의 목숨을 버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열리는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질서를 열망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2독서>에서 바울로는 말씀하십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8-39)

 

    우리의 순교자들은 바로 이 하느님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믿음을 굽히지 않고, 모진 형벌을 당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분들은 죽음을 넘어 하느님을 향해 떠났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위 말씀에 따르면, 제자의 길은 세 가지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을 버려는 것이요, <둘째>는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는 것이요, <셋째>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첫째 길>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단지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자신을 비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어의 뜻은 거부하다’, ‘거절하다’, ‘부인하다입니다. 곧 자신의 뜻을 부인하는 것이요, 자신에게 신뢰를 두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신 하느님께 신뢰를 두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요, 하느님의 권능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 길>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단지 고통을 받아들여 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원어의 뜻은 어머니가 애기를 가슴에 품듯 가장 소중한 것을 끌어안다입니다. 곧 사랑으로, 순명으로, 아버지의 뜻으로 반겨 맞아들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날 마나 계속해서 말입니다.

    또한 십자가는 죄인을 못 박는 사형도구이기에,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셋째 길>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그 지향이 오로지 예수님께 있어야 함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4)

 

    우리가 오늘 기념하는 선조 순교성인들이 바로 그렇게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었지만, 살아있는 분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날에도, 비록 신앙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목숨을 바쳐야하는 순교를 강요당하지는 않을지 모르나, 하늘나라의 정의와 진리를 위한 투신의 삶은 여전히 시대를 거슬려 박해를 당하기 마련입니다. 또한 형제들과 자기 자신과의 영적 싸움에서 여전히 백색순교와 녹색순교가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 우리도 자신을 버리더라도, 십자가를 지더라도, 오로지 예수님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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