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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9.2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9-21 조회수1,697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6년 9월 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제1독서 에페 4,1-7.11-13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복음 마태 9,9-13

그때에

 9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어제 순교자 현양대회는

 많은 분들의 기도와

 염려 덕분에 잘 마쳤습니다.

신자들이 2,500명 정도 오셨고,

많은 분들이 기쁨과 함께

좋은 시간 그리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셨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어제는 감사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주교님을 비롯한 많은 신부님들,

갑곶성지 성가대를

비롯한 성지 봉사자들,

 새벽부터 나와서 밤늦게까지 일한

성지 직원 등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 조용히 묵상 중에

기억해보니 눈에 띄지는 않지만

정말로 고마운 분들이

 계속해서 떠올려지더군요.
“신부님, 저는 힘이 없어서

그냥 기도만 열심히 할게요.”

라고 말씀하시던 할머니,

현양대회 짐을 나르도록

화물차를 가지고 오셔서

함께 날러주신 형제님,

의자 하나라도 날라서

보탬이 되겠다면서 의자를

번쩍 드시는 자매님,

말없이 행사장 주변의

 쓰레기를 줍는 분,

화장실에서 손을 닦으신 뒤에

사방에 튄 물을 다음 사람을

위해서 정성껏 세면대를

닦아주시는 분 등등

고마운 분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솔직히 이런 분들은

 눈에 잘 띄지 않지요.

그러나 순교자 현양대회를

잘 마칠 수 있도록 해주신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신

 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옛날에 어떤 부자가 세 아들에게

 엽전 한 냥을 주면서 방 안을 가득

채울 만한 물건을 구해서

오늘 중으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낡은 집단을 사왔지만

방의 한 켠 밖에 채우지 못했지요.

둘째는 쌀을 사왔지만

 역시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내는 초를 사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초는 방 안을

가득 빛으로 채웠지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촛불로

방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작은 행동 그리고

정성어린 말 한 마디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 눈에 잘 띄지 않았던

봉사자들처럼 어쩌면 주님께서도

원하시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세리였던

마태오를 부르셨지요.

그런데 그 부르심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자신의 모든 것,

재산 뿐 아니라 가족까지

버리고 주님을 따르라는

부르심은 엄청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역할은 사실

자그마한 말과 행동으로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고 풍요롭게

채울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 측면에서 우리들의

부르심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혹시 거창하고 대단한 것만을

떠올려서 주님의 부르심에

 아무런 응답도 하지 못하고,

그냥 세속의 흐름에 나를 맡기면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사랑의 실천이 바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백 권의 책에 쓰인 말보다

성실한 마음이 사람을

 더 크게 움직인다.

(벤저민 프랭클린)

순교자 현양대회 제대입니다.

남녀 사이의 차이

남성은 다음과 같은 경향이 있다.
- 감정의 언어보다

논리의 언어를 더 편안하게 느낀다.
- 스트레스에 덜 민감하게 반응한다.
- 다른 사람의 부정성에

에너지를 덜 뺏긴다.
- 남들에게 더 쉽게 한계를 정한다.
- 문제를 풀 때는 결과 지향적이며

해결까지 가는 동안

감정에는 관심을 덜 둔다.
- 이해하고 느끼는 것보다

행동에 강하게 끌린다.
여성은 다음과 같은 경향이 있다.
- 직관을 더 편안하게 느낀다.
- 본능적으로

더 마음이 가는 대로 따른다.
- 상대방의 감정에 더 잘 공감하고

인내심을 더 잘 발휘한다.
- 기꺼이 더 많이 감정을 표현한다.
- 문제를 해결할 때

감정도 함께 다뤄지길 바란다.
- 행동보다 이해하고

  느끼는 것에 강하게 끌린다.
남성과 여성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차이를 잘 이해한다면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런데 우리들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어.”

라는 말로 상대방의 차이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해하지 않으려는

그 모습이 더 상식적이지

 못한데 말이지요.

현양대회 미사 전, 고해성사 중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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