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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9.2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9-22 조회수1,428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6년 9월 22일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제1독서 코헬렛 1,2-11

2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3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4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5 태양은 뜨고 지지만,

떠올랐던 그곳으로

 서둘러 간다.

 6 남쪽으로 불다

북쪽으로 도는 바람은

돌고 돌며 가지만,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7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가득 차지 않는다.

강물은 흘러드는

그곳으로 계속 흘러든다.
8 온갖 말로 애써 말하지만,

아무도 다 말하지 못한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못한다.
9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10 “이걸 보아라, 새로운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이전,

옛 시대에 이미 있던 것이다.
11 아무도 옛날 일을

  기억하지 않듯,

 장차 일어날 일도 마찬가지.

 그 일도 기억하지 않으리니,

그 후에 일어나는

일도  매한가지다.

복음 루카 9,7-9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7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8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아니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무엇을 하고

놀았을까를 생각해 보았지요.

지금처럼 시간 나면 책 읽는

모습은 아니었지요.

그렇다고 공부를 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해 본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친구들과 놀았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그중에서도 종이를 접어서

놀았던 기억이 떠올려지네요.

 종이를 가지고 참 많은 것을

만든 것 같습니다.

비행기, 배, 딱지……. 당시의

유행이었던 만화인 마징가도

 있었고 천 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학을

만들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

한 번 만들어 보았습니다.
정말로 신기한 것은 이렇게

 종이를 접으며 놀았던 것이

자그마치 40년 전의 일인데

어떻게 접었는지가

기억난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그리 좋지 않았던 제가

기억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당시에 정말로 재미있게

놀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당시를 떠올리면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만큼 좋은 기억이라는

증거겠지요.
우리들 삶은 분명히 좋은 일과

나쁜 일의 연속입니다.

대체적으로 좋은 일은

좋은 기억으로,

그리고 나쁜 일은

나쁜 기억으로 각인되곤 합니다.

그런데 나쁜 일 역시 기억 속에서

바뀌어서 좋은 기억으로

떠올려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종종 하지 않습니까?
‘그때 정말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그렇다면 나쁜 기억은

어떤 것일까요?

해서는 안 될 일을 했을 때,

 그래서 후회를 가져오는

말과 행동이 나쁜 기억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추억할 수 있는

과거의 시간을 좋은 시간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지금 현재의

행동으로 결정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억을

만들면서 사시겠습니까?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 영주는 나쁜 기억을

간직하고 있지요.

바로 의로운 사람인

 세례자 요한의 목을

자신의 체면 때문에

베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나쁜 기억은 현재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두고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는

소문에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불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짓고는 못산다는

옛 사람들의 말이 생각납니다.

 바로 죄가 나쁜 기억을

만들기 때문인 것이지요.

렇다면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떤 기억을

 만들면서 살아야 할까요?

죄로 물든 나쁜 기억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실천을

적극적으로 행하면서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드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후회하지 않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사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다.

(세네카)

이 새벽에 잠깐 동안 만들어 본 종이접기...

어떻게 말을 바꿀 것인가?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식당 앞에 걸인이

조그마한 피캣을 들고

 누워있었습니다.
“배가 고픕니다. 도와주세요!”
그런데 지나가던

한 남자가 피켓의 내용을

새롭게 써 주었습니다.
“배고파 본 적이 있으신가요?”
잠시 후... 많은 사람들이

걸인의 깡통에

돈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가던 남자는 마케팅

전문가인 패트릭

랑보아제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냥 호주머니를

열지 않습니다.

공감해야만 기꺼이 엽니다.

프랑스 시인인

앙드레 브로통의

이야기도 유사하게

사람의 감정을 잡아끕니다.

그는 길가에 있는

걸인의 푯말을 봅니다.
“저는 앞을 못보는 맹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지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이때 보르통이 이렇게

문구를 바꿔주자 많은

사람들이 호주머니를 열어

 깡통을 채워줍니다.
“봄이 왔지만 저는

그 봄을 볼 수 없습니다.”
말 한 마디에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중한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었을까요?

혹시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말로

 상처와 아픔을 주는데 힘을 쏟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을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제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살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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