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9.2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9-24 조회수1,271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6년 9월 24일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제1독서 코헬렛 11,9―12,8

9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10 네 마음에서

 근심을 떨쳐 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을 흘려 버려라.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12,1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

“이런 시절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네가 말할 때가

 오기 전에.
2 해와 빛,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고,

 비 온 뒤 구름이

다시 몰려오기 전에

그분을 기억하여라.
3 그때 집을 지키는

자들은 흐느적거리고,

 힘센 사내들은 등이 굽는다.

맷돌 가는 여종들은

 수가 줄어 손을 놓고,

창문으로 내다보던

여인들은 생기를 잃는다.

 4 길로 난 맞미닫이문은 닫히고,

 맷돌 소리는 줄어든다.

새들이 지저귀는

시간에 일어나지만,

노랫소리는 모두 희미해진다.
5 오르막을 두려워하게 되고,

길에서도 무서움이 앞선다.

편도나무는 꽃이 한창이고,

메뚜기는 살이 오르며,

참양각초는 싹을 터뜨리는데,

인간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야만 하고, 거리에는

 조객들이 돌아다닌다.
6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깨어지며,

샘에서 물동이가 부서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깨어지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7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8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모든 것이 허무로다!

복음 루카 9,43ㄴ-45

그때에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에 넘겨질 것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제가 살고 있는 갑곶성지를

저녁 늦은 시간이나 이른 아침에

돌아다니다보면 만나는

동물이 있습니다.

(물론 다른 시간대에도

볼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많지 않은 이 시간대에 주로

 돌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청솔모입니다.

처음에는 쥐인 줄 알고서

 깜짝 놀랐지만,

잣이나 도토리를 나르는

모습을 자주 보면서 이제는

상당히 낯익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한 번은 새벽에 삼위비 봉헌 초를

켜고 있는데 바로 제 옆을

지나가다가

저와 눈이 마주친 것입니다.

청솔모의 손에는 잣나무

열매를 들고 있더군요.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예뻐서

 빤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솔모는

제 마음을 몰라주더군요.

자기를 해칠 것이 아니라

단지 그저 예뻐서

 쳐다볼 뿐이었는데,

휙 하고 다른 나무 위로 올라가면서

제 곁을 휙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청솔모가 왜 도망갔을까요?

분명히 저는 해칠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말이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청솔모가

제 마음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야 그런 의도가 아니지만,

힘이 약한 청솔모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안위를 생각해야 하니

우선 피하고 보는 것이겠지요.
상대방의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내 마음을 몰라준다면서

불평불만을 말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서 상대방을 판단하고

미워하고 단죄하기까지 합니다.

 하긴 고양이와 개가 싸우는

이유는 서로 좋아하는 표현이

 달라서 그렇다고 하지요.

고양이는 좋아하면 꼬리를

아래로 내리는 반면, 개

는 상대방에 대한 적의를

갖게 되면 꼬리를

 아래로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마음으로 자기 식대로

이해하고 판단하고 있으니 미움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마음이라는 것 자체를

인정한다면 그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예고를 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그 예고를 받아들이고

있지 못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해서 전혀

묻지 못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었고,

주님께서 그런 고통과 시련을

겪으셔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묻는 것조차 두려웠습니다.
바로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이 세상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힘없이 수난과 죽음을 당해야 하는

주님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마음은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한 사랑 그자체입니다.

즉, 우리가 구원되려면

 당신의 수난과 죽음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지요.
자기 식대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잘못된 습관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큰 사랑을 주시는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며,

이로써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는

주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당신이 하는 것,

꿈꾸는 것은

 모두 이룰 수 있으니,

 지금 시작하라!

(요한 괴테)

순례객이 찍어서 보내주신 성지의 청솔모 사진)

만나고 싶은 만남

(정채봉, ‘만남’ 중에서)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입니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니까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입니다
피어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가장 비참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닳아 없어질 때에는

 던져 버리니까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입니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
오늘도 수많은

만남을 갖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만남을 만들고 싶습니까?

따뜻한 말로 좋은 만남을 만드세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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