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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드레아신부님복음묵상(재물과 구원의 관계는?)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9-25 조회수1,195 추천수0 반대(0) 신고

 

안드레아신부님복음묵상

"재물과 구원의 관계는?"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순교자 성월을 지내면서

지난 주 강론에서

한 주간이라도 순교자처럼

살아보자고 말씀드렸는데

그렇게 살아보셨나요?

힘들기도 했지만

더 행복한 한 주간이 되었죠?

형제 자매님,

오늘의 전례독서들은

우리가 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지를 깨우쳐줍니다.

먼저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를 시켜 이스라엘의

부유층에 대해서

 경고를 하십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부를

누리는 데 정신이 팔려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도 잃어버리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울 사명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라자로의

대조를 통해서

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새롭게

하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은 윤리적인

판단을 하시지 않고

그냥 부자와 거지의

대조적인 모습을 소개합니다.

호화롭게 살아가는

부자와 구걸하며 살아가는 거지.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은 부자와

추위도 제대로 막지 못할

남루한 옷을 입은 라자로.

날마다 동료와 즐겁게

연회를 즐기는 부자와

살집과 친구도 없는

외로운 라자로.

한편에는 부와 쾌락이

다른 한편에는 기아와

빈곤이 존재합니다.

형제 자매님,

이 예화는 현대세계의

축소판과도 같습니다.

오늘날 과학이 발달하고

인류의 부가 축적되어

사람들이 그 혜택을 많이

누리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어두운

그늘이 있습니다.

빛이 밝으면 상대적으로

그늘이 더 짙어지듯이

한 사람이 누리는 부가 크면

상대적으로 더 심한 빈곤을

느끼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형제 자매님,

라자로는 오늘도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한 예로 우리가

지하도를 오르내리다 보면

엎드려서 구걸하고 있는

사람을 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재빠르게

판단을 합니다.

저 사람은 멀쩡하게 생겼는데

공사판에서 일을 해도

되겠는데 왜 구걸하고 있지?

저 아이 뒤에는

반드시 조직이 있을 거야.

그러니 내가 도와준다 해도

폭력배가 다 착취해 갈 것이니

도와줄 필요가 없어.

저 사람은 알코올 중독자야.

그러니 내가 돈을 주면

또 술을 마시고

더 망가질 테니까

차라리 주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야.

이렇게 우리의 모든 판단은

내가 도와주지 않는 것을

정당화 하는 방향으로 흐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

죄인들을 만났을 때

한 번도 그런 판단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그 사람이 필요한 것을

베풀어 주셨고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으로 끌어안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판단하지 말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베풀라고 하십니다.

형제 자매님,

나중에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서게 될 때,

하느님께서

너는 그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마실 것을 알면서도

왜 돈을 주었느냐?”

혹은 그 돈이 조직폭력배의

자금이 될 줄 알면서

왜 꼬마에게 돈을 주었느냐?”

라고 추궁하시진

않을 것입니다.

돈을 어떻게

사용했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책임질 일입니다.

나에겐 사랑을

베풀었느냐 아니면

이런 저런 핑계로 사랑할 기

회를 잃어버렸느냐를

따지실 것입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직장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는 실직자,

더 일할 수도 있는데 단순한

경제논리에 의해 명퇴되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들,

가정이 파괴되어

마음 붙일 곳이 없어 거리를

방황하는 결손가정 청소년들,

능력과 기술이 있는데도

외면당하는 장애우들,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쓸쓸히

죽을 날을 기다리는

독거노인들 등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다가오는

오늘의 라자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도전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형제 자매님,

이야기의 후반을 보면

재산의 유무가 죽음 이후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부자가 벌 받는 이유는

그가 부를 충분히

누렸으면서도

그것을 자기만의 것으로

움켜쥔 채

문 앞에서 굶주리고 있던

라자로에 대해서는

전혀 마음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만의 행복에 취해서

몸도 마음도 모두 거기에

묻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

부자의 잘못입니다.

아무리 부자라 해도

자신의 경제적 풍부함이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누어줄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내가 가진 재물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잘 사용하면 내 구원에

도움이 되지만

내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고 움켜쥐고 있다면

내 구원에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끝부분에서 보면

아브라함은 라자로를

자기 형제들에게 보내어

미리 경고해 달라는

부자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계시된

하느님의 말씀으로 충분하고

어떤 기적이라도

부족한 믿음을 보충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현실생활에만

몰두하고 있다면,

아무리 위대한 기적이나

애절한 호소도

그 사람의 마음을

깨우쳐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세계에 대한

깨달음은 각 사람의 삶의

자세와 관계가 있습니다.

일상생활 안에서

라자로를 발견하고 하느님의

호소에 민감하게 응할 수 있는

깨어있는 마음은 인간의

구원과 관련되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그래서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다시 호소하십니다.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그대는 많은 증인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였을 때에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대구대교구 산격성당에서

-박영봉안드레아신부 드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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