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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6주일 제1독서 (아모6,1ㄱㄴ.4-7)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6-09-25 조회수1,340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26주일]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루카 16,19-31)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아모스 예언자는, 시온과 사마리아에서 흥청거리며 살면서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 자들이 맨 먼저 사로잡혀 끌려가리라고 예언한다.(아모스 6,1ㄱㄴ.4-7)
전능하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불행하여라, 시온에서 걱정 없이 사는 자들,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 놓고 사는 자들! 4 그들은 상아 침상 위에 자리 잡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양 떼에서 고른 어린양을 잡아먹고, 우리에서 가려낸 송아지를 잡아먹는다. 5 수금 소리에 따라 되잖은 노래를 불러 대고, 다윗이나 된 듯이 악기들을 만들어 낸다. 6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고, 최고급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7 그러므로 이제 그들이 맨 먼저 사로잡혀 끌려가리니, 비스듬히 누운 자들의 흥청거림도 끝장나고 말리라.”

 

 

연중 제26주일 제1독서 (아모6,1ㄱㄴ.4-7) 

 

"그들은 상아 침상 위에 자리 잡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양 떼에서 고른 어린양을 잡아먹고, 무리에서 가려낸 송아지를 잡아먹는다."(4) 

 

 아모스서 6장 4-6절이스라엘의 부유층들과 권력자들의 사치스럽고 부패한 생활을 구체적으로 고발하는 내용이다. 

 

이들 각 절들을 시작하는 첫 단어는 정관사 '하'(ha)를 수반하는 남성 복수 분사형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표현상의 특징은 세 절 각각에서 묘사하는 모든 내용이 북부 이스라엘의 특별한 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새 성경은 이런 본문의 강조점을 살려 '그들은'이라고 번역하였다. 

 

아모스서 6장 4절은 그들의 호화스럽고 타락한 일상 생활을 묘사한다. 본문의 '상아 침상'에서 '침상'에 해당하는 '밋토트'(mittoth)의 원형 '밋타'(mitta)는 본래 '안락의자'나 '침대'모두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그러나 '밋타'(mitta)창세기 47장 31절, 사무엘 상권 19장 13절구약의 대부분에서 침대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본문의 침대가 '상아'('셴'; shen; ivory)로 장식된 것을 보면, 일반 가정의 침상이 아니고 고위 관리나 부유층의 집에만 있는  호화스럽운 침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본문에서 '밋토트'(mittoth)'자리 잡고'에 해당하는 '쇼케빔'(shokebim)함께  사용되었다. 그런데 '쇼케빔'의 원형 '샤카브'(shakab)구약에서 대부분 죽어서 영원히 눕는경우나  남녀간의 부적절한 성관계를 묘사하는 경우에 주로 사용되었다(창세19,33; 54,2). 

 

본문의 '상아 침상 위에 자리 잡고'라는 표현도 북부 이스라엘의 부유층 사람들의 사치스런 면모를 반영하는 것일 뿐 아니라 문란하게 성적 관계를 맺는 그들의 퇴폐적인 삶의 면모를 암묵적으로 지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안락 의자'에 해당하는 '아르소탐'(arsotham)의 원형 '에레쉬'(eresh)침대보다는 침대 대용으로 사용되는 일종의 쿠션이 달린 커다란 방석이나 의자 위에 놓인 방석으로 볼 수 있다. '에레쉬'가 시편 6장 7절에서는 슬픔에 찬 시편 기자가 눈물을 흘리는 요로 묘사되었고, 시편 9장 12절에서는 의자 위에 놓은 방석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새 성경에서는 '밋타'(mitta)는 '침상'으로, '에레쉬'(eresh)는 '안락의자'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본문에서 '에레쉬'(eresh)'비스듬히 누워'에 해당하는 '우쎄루힘'(useruhim)함께 사용되었다. 이것은 말 그대로 기지개를 켜는 것, 즉 잠에서 깨어 몸을 뒤트는 정도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여기서 분사형, 즉 현재 계속되는 상태를 나타내는 의미를 지닌 표현으로 사용되어 마치 안락한 의자나 쿠션 위에서 지속적으로 하품하고 몸을 오그렸다 폈다를 반복하는 것을 연상케 한다. 이것은 그들이 사치스런 삶을 살 뿐 아니라 게으르고 태만한 삶의 면모를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양 떼에서 고른 어린양을 잡아먹고, 우리에서 가려낸 송아지를 잡아먹는다' 

 

이스라엘의 고위층들이 성적으로나 향락적 측면에서 문란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다는 상반절에 이어 본문에서는 그들이 고대 근동에서 매우 귀중한 가축이었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쉽게 잡아 먹기 어려운 어린양이나 송아지를 잡아먹었다는 내용을 다룬다. 

 

여기서 '잡아 먹고'에 해당하는 '오켈림'(okellim)'먹다'라는 의미를 지닌 '아칼'(akal)의 분사형이다. 따라서 이것을 직역하면 '잡아 먹는 자들'이 된다. 이것은 부유한 자들이 특별한 잔치나 행사가 있을 때만  어린양이나 송아지를 잡은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빈번하게 이런 귀한 고기들을 먹었다는 의미이다.

 

또한 그냥 어린양을 잡아 먹고, 송아지를 잡아먹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어린양은 '양 떼에서'라는 표현이 수식하고, 송아지는 '우리에서'라는 표현이 수식한다. '양 떼에서'와 '우리에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서 표현에는 모두 '~으로부터'라는 의미의 전치사 '민'(min)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양 떼 중에서, 그리고 소 우리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만을 골라서 먹었다는 뉘앙스를 전달한다. 또한 이것은 나아가 그들이 날마다 가축들을 잡아먹어도 될 정도로 수많은 양 떼와 송아지가 있었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일반 백성들은 아모스서 2장 6절에서처럼, 빚돈 몇 푼이나 신 한 켤레의 빌미로 노예로 팔려 갈 정도의 빈곤한 삶 살았고, 아모스서 5장 11절처럼 농사를 짓는 이들 중에 힘없는 사람들은 과중한 세금과 권력자들이 요구하는 뇌물로 말미암아 그야말로 피폐한 삶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부유한 자들은 가난하고 힘든 자들에게서 쥐어 짜낸 돈으로 수많은 양 떼와 송아지 떼를 사서 키우면서, 값비싼 고기들과 음식들을 날마다 즐기는 호사스러운 삶을 살았던 것이다. 

 

'수금 소리에 따라 되잖은 노래를 불러대고, 다윗이나 된 듯이 악기들을 만들어낸다.'(5) 

 

'되잖은 노래를 불러대고'에 해당하는 '합포레팀'(haporetim)에서 '헛된','되잖은' 이라는 형용사가 나타내듯이 타락한 부유층들이 날마다 이런 저런 악기를 만들고 즉흥적으로 그것을 연주하며, 아무 의미도 없는 노래를 쓸데없이 주절거리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구약에서의 노래는 거의 대부분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 하느님의 은혜롭고 놀라우신 역사에 대한 증거와 이에 대한 감사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탈출15,1; 신명31,22; 2사무22,1). 하지만, 본문에서는 예외적인 것으로 그저 순간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특별한 의미나 가치도 없는 노래를 중얼거리듯 부르는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다윗은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악기를 만든 것과는 달리 타락한 부유층들과 집권층들은 자기 자신들의 향락적 여흥을 위해 악기를 만들었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하느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원수들에게 쫓기면서도 하느님을 신뢰하여 찬양했던 다윗의 지극히 신실한 모습과 많은 부와 강성한 군대를 가지고 매우 평화스러운 삶을 살면서도  하느님을 사랑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삶, 매일 매일 쾌락의 노래 가락에 젖어 사는 타락한 북부 이스라엘의 부유층의 모습을 극적으로 대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고, 최고급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6)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사는 타락한 부유층의 잘못된 삶에 대해 고발하는 내용 중에 본절은 값비싼 포도주나 기름을 해프게 사용하는 낭비에 대해 지적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포도주는 물처럼 자주 마시는 일종의 음료수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마셔서 만취하게 되면, 포도주도 다른 술처럼 사람의 이성과 신앙을 마비시켜서 죄를 짓게 만든다.  성경은 이것에 대해 경계하는 직설적인 가르침과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잠언20,1; 23,1; 31,4; 창세9,20-25; 창세19,33-35). 

 

문제는 여기서 '대접'에 해당하는 '미즈라크'(mizraq)성전의 '제사용 대접'(sacrificial bowls)으로 보느냐, 아니면 성전 기물들처럼 매우 귀한 재료인 금이나 은같은 것으로 고급스럽게 만든 잔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느냐 하는 것이다. 

 

전자로 본다면, 이것은 단지 주흥을 돋우는 것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그 기물들을 사용하여 섬기는 주님을 향한 경멸과 멸시의 의미를 지녀서 하느님의 신성까지 모독하는 데까지 이르렀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보통 후자로 해석하는데, 이것은 부유층들이 술잔 하나를 사용해도 극도로 사치스런 행태를 보였으며, '미즈라크'(mizraq)'뿌리다', '많이 흩트리다' 등의 의미를 지닌 '자라크'(zaraq)에서 유래하여, '대접', '대야', '물동이' 많은 양의 액체를 담는 용기를 나타내는 표현이기에, 그만큼 그들이 아예 술에 찌들어 사는 삶, 폭음을 일삼는 방탕한 삶을 사는 것을 나타내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최고급', '귀한'에 해당하는 '레쉬트'(reshith)'가장 좋은', '가장 먼저의'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가나안 지역에서 양산되는 일반적인 올리브유가 아니라 값비싼 나르드 향이나 스바 여왕이 솔로몬 임금에게 선물로 가져온 귀한 향료와 같은 것으로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극상품 기름을 가리킨다(1열왕10,10). 

 

이런 나르드 향을 몸에 바르는 것은 질병이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몸에 향을 내고 좋은 피부를 가꾸기 위한 것으로서 사치와 향락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끝으로 이처럼 온갖 향략을 누리는 자들이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질책이 나온다.

 

여기서 요셉의 환난은 그들과 형제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스런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것은 그들에게 닥칠 하느님의 심판과 비참한 곤경의 상황을 암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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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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