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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26."가장작은 사람이라야 가장 큰 사람이다"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6-09-26 조회수915 추천수0 반대(0) 신고

루카 9,46-50(연중 26주 화)

 

 

 

   오늘 <복음>은 “가장 큰 사람”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씀을 전해줍니다.

 

 

 

   먼저,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논쟁이 일어났고, 이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둔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들 가운데 가장 작은 사람이라야 가장 큰 사람이다”(루카 9,48)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는 작아질수록 커진다는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작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작은이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큰 사람인 작은 사람’이란?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사람’, 곧 작은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이’는 성경에서 무능하고 힘없는 사람, 그래서 돌보아주지 않으면 곧 죽게 되는 약한 이를 표상합니다.

 

   따라서 ‘어린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회에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미천하고 버려진 이, 천대받고 소외된 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곧 자신을 타인보다 위에 두지 않는 사람, 곧 높이 있어 우러름 받는 이가 아니라 아래에서 천대받는 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상대방을 허물이 있는 채로, 결립과 허약함이 있는 채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바로 용서의 다른 형태이기도 할 것입니다.

 

   결국, 작은이를 받아들여 자신이 작아진 이가 되는 것, 그것은 허물에 떼를 묻혀 허물을 함께 지는 이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혁명을 부르짖으십니다. 모두가 높아지고 커지고 첫째가 되고자 안달인 이 시대에, 작아지고 낮아지고 꼴찌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앞에, 그리고 형제들 앞에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정한 큰 사람이 되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의 후반부는 요한과 예수님의 대화입니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아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루카 9,49-50)

 

 

 

   여기에서, 요한은 ‘저희’라는 말을 세 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곧 ‘저희’가 그를 보았고, 그는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고, ‘저희’는 그를 막으려고 하였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바로 앞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르 9,37)라고 하시면서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우쳐주셨건만,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까닭입니다.

 

 

 

   그러니, 잘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란 사실을 말입니다.

 

   사실, 공동체에서 ‘우리’가 주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게 되고, 배타적이게 되고 맙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한 공동체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공동체가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나는 해도 되지만, 너는 안 된다’는 특권의식이나, ‘우리는 되지만, 너희는 안 된다’는 편파의식은 참으로 오만하고 이기적인 생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나’ 혹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인가가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인가 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만을 혹은‘저희’만을 위해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기”(2코린 5,15) 때문입니다.교회는 독점되어서도 안 되고, 배타적이어서도 안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뿐만 아니라, 원수마저도 받아들이는 혁명적인 전환을 요청하십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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