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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9.2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9-27 조회수1,344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6년 9월 27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제1독서

욥 3,1-3.11-17.20-232

1 욥이 입을 열어

제 생일을 저주하였다.

 2 욥이 말하기 시작하였다.

3 “차라리 없어져 버려라,

 내가 태어난 날,

 ‘사내아이를 배었네!’

하고 말하던 밤!

11 어찌하여 내가

태중에서 죽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올 때 숨지지 않았던가?

 12 어째서 무릎은

나를 받아 냈던가?

 젖은 왜 있어서

내가 빨았던가?
13 나 지금 누워

쉬고 있을 터인데.

잠들어 안식을 누리고

있을 터인데. 1

4 임금들과 나라의 고관들,

폐허를 제집으로 지은 자들과

함께 있을 터인데.

15 또 금을 소유한 제후들,

 제집을 은으로 가득 채운

자들과 함께 있을 터인데.

16 파묻힌 유산아처럼,

빛을 보지 못한 아기들처럼,

나 지금 있지 않을 터인데.

17 그곳은 악인들이

소란을 멈추는 곳.

 힘 다한 이들이

안식을 누리는 곳.
20 어찌하여 그분께서는

고생하는 이에게

 빛을 주시고,

영혼이 쓰라린 이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21 그들은 죽음을 기다리건만,

숨겨진 보물보다 더 찾아

헤매건만 오지 않는구나.

 22 그들이 무덤을 얻으면

환호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련만.

23 어찌하여 앞길이

보이지 않는 사내에게,

하느님께서 사방을 에

워싸 버리시고는

 생명을 주시는가?”

복음 루카 9,51-56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저는 보통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에 일어납니다.

이런 말을 들으신 분들은

하나같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부님, 그렇게 일어나면

피곤하지 않으세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답변하지요.
“원래부터 하던 거라

괜찮습니다.”
사실 이렇게 일어난 것이

벌써 16년째입니다.

원래 하던 일,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별로

피곤하지도 않고 또

어렵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합니다.

하긴 저 역시 이런 식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떤 분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분의 직업이 높은 건물의

외벽에서 유리창을

는다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 제가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분들의 일이

대단하다 싶어서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무섭지 않으세요?”

라고 말씀을 드렸지요.

그러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원래부터
 하던 일이라

괜찮아요.”그렇게

살지 않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 삶이 어렵고

힘들어 보이지만, 원래부터

하던 일은 그리 힘들지도

 또 어렵지도 않습니다.

그냥 자신의 일상 삶이

된다면 남들의 시선과는

다르게 안하게

생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주님의 일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주님의 일 역시 나의 평범한

일상 삶의 일부처럼

생활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사실 많은 이들이 주님을

따르는 것,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어렵게 생각합니다.

사랑과 희생을 하면서

사는 것이

보통의 사람이 아닌

특별한 사람이나

가능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포기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렇게 살아보지도 않았고,

살려는 마음도 없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원래부터 하던 건데요.

  괜찮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마리아인들의

마을로 들어가려는

예수님 일행을

맞이하지 않자,

야고보와 요한 제자는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주님께서 그토록 사랑을

강조하셨고 또 그 사랑을

보여주셨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미움과 복수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삶이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이지만,

아직은 미워하고 판단하며

또 복수 등의 단죄를 하려는

마음을 더 많이 간직하며

살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마음으로는 사랑의 삶을

실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주님께서 꾸짖으셨던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삶이 오직

주님께로 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살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 어렵지 않게

주님의 일을 하면서 그 안에서

 참 기쁨과 행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연연함과

구애됨을 버려야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여유 있고 충실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요제프 킬슈너)

어제 동창모임을 했던 인천의 한 본당입니다.

세상을 멈춰 세워,

(풀턴 쉰 대주교, ‘한 해를 풀턴 쉰과 함께’ 중에서)

자살은, 장기 두는 사람이

자기 앞에 놓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자 아예 장기판을

엎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엎어 버리는 게

장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듯,

 자살은 인생 문제에

대한 해법이 아닙니다.
동물은 자살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포자기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불멸성 때문입니다.

자포자기는 자기애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다른 모든 이들에게 등을

돌리는 행위입니다.

 결국엔 그 자신마저도

넌더리가 나 스스로

없어지려 합니다.
생명의 영역은 바로

하느님의 영역이지요.

 우리 인간이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어리석음에서 원죄가 나왔고

각종 죄들이 흘러나왔습니다.

 이제는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자기 삶의 모든 문제들이

술술 풀어지는 것 역시

보너스로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거의 15년만에 동창신부 전체가 모였습니다.

 너무나 고맙고 사랑하는 동창신부들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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