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0.0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03 조회수1,049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6년 10월 3일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제1독서 갈라 1,6-12

형제 여러분,

6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 주신 분을

여러분이 그토록 빨리 버리고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다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실제로 다른 복음은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을 교란시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8 우리는 물론이고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9 우리가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이제 내가 다시 한 번 말합니다.

누가 여러분이 받은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10 내가 지금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하느님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입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이라면,

나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종이 아닐 것입니다.
11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분명히 밝혀 둡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12 그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복음 루카 10,25-37

그때에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요즘에 바쁘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바쁘지만,

 제가 있는 성지 역시

9월 순교자 성월부터

10월 로사리오

성월까지는 순례객들이

 많아서 상당히 바쁜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한 달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참 빠르다는

 말을 했더니, 어떤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신부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봐요.”
어린이들의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가지

않는 것처럼 느끼는 반면에,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정말로

빠르게 지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곧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하긴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반면,

싫은 사람과 같이 있으면

시간이 얼마나 더디게 흐릅니까?
상대적인 시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서, 우리 각자가

어떻게 시간을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시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또 반대로 의미 없는 시간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이가 아닌

바로 내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 자신에게

달려 있는 시간을

언제 잘 사용해야 할까요?
당연히 바로 지금입니다.

솔직히 많은 이들이 ‘나중에!’

라는 말로 뒤로 미룹니다.

 시간이 날 때인

나중을 외치는 것이지요.

그래서 중요한

속을 뒤로 미루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나중이라는 시간은

과연 후회하지 않는 순간으로

내게 다시 돌아올까요?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말씀을

우리들에게 전해주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잃고 초주검이

 되어버린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이웃인지를 묻는 것이었지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버리는

사제나 레위인이

이웃일 리 없습니다.

이렇게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진정한 이웃은

상처를 돌봐주고 여관까지

데리고 간 착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사제나 레위인이

나쁜 사람이라서

길 반대쪽으로 외면했을까요?

나름 사연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오던 길이었으니

깨끗해져 있는 상태였겠지요.

 따라서 피 흘리는 사람을 접해서

 다시 부정해지는 것을

 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다른 사람이 보살 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외면했을지도 모릅니다.

 또 급한 일이 있어서 어디를

먼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

돌봐줄 것을 생각하고

 피했는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금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 사랑이 필요한

이웃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음이

문제였고 그래서

이웃이 될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사랑은 바로 지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이라는 시간도 아니고,

 머뭇거리고 회피하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지금 적극적으로

행할 때만이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굳게 움켜쥔 주먹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을

가로막는 자물쇠지만,

활짝 편 손은

 행운을 약속하는 열쇠다.

(인도 속담)

착한 사마리아 사람.

포기의 열매

(라마 티르타)

꽃의 기쁨을 포기했을 때
온 땅이 나의 정원이 되었으며
맛의 기쁨을 포기했을 때
온 세상이 나의 진정한 맛이 되었네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포기했을 때
세상의 아름다움이

내 앞에 자신을 드러냈으며
트인 하늘을 얻으려는

욕망을 포기했을 때
아침 미풍이 내 뺨을 어루만졌네
듣고자 하는 욕망을 포기했을 때
세상의 음악과

노래가 나의 것이 되었으며
모든 상상의 꿈이 나를 떠났을 때
내가 모든 이의 꿈이 되었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졌을 때
주장할 몸이 사라졌으며
눈과 손과 발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들이 모든 이의 것이 되었을 때
온 세상이 나의 것이 되었네
이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욕심과 이를 통해 발생하는

이기심들을 포기했을 때

더 많은 것들을 주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의 생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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