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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0.0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04 조회수1,500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6년 10월 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제1독서 갈라 1,13-24

형제 여러분,

13 내가 한때 유다교에

있을 적에 나의 행실이

어떠하였는지 여러분은

이미 들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14 유다교를 신봉하는 일에서도

동족인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보다

 앞서 있었고,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심이었습니다.
15 그러나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16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17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
18 그러고 나서 삼 년 뒤에

나는 케파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보름 동안

그와 함께 지냈습니다.

19 그러나 다른 사도는

아무도

 만나 보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만

보았을 뿐입니다.

 20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글은

하느님 앞에서 말합니다만

 거짓이 아닙니다.
21 그 뒤에 나는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22 그래서 나는 유다에 있는

그리스도의 여러 교회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3 그들은 “한때 우리를

박해하던 그 사람이 지금은

 자기가 한때 그렇게

없애 버리려고 하던

믿음을 전한다.”는

소문만 듣고 있었습니다.

 24 그리고 그들은 나 때문에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복음 루카 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바쁘게 운전할 때가 있습니다.

약속시간이 촉박하거나,

급하게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

 초조해지는 마음을 안

운전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신호등의 시간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늘 이렇게 시간에

쫓기며 살았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승강기를 탔을 때에는 가려는

 층 숫자를 누른 뒤에는

닫힘 버튼을 연달아 누릅니다.

자판기에서 커피 버튼을 누르고는

 커피가 다 나오지도 않았는데

입구에 손을 미리 집어넣고서

뽑을 준비를 합니다.

컴퓨터의 부팅 속도가

느리다면서

투덜거릴 때도 많았습니다.

 비행기 탈 때에도 맨 먼저

 타려는 것인지 일찍부터

 힘들게 줄을 섭니다.
신호등의 시간이 길면

또 얼마나 길까요?

 승강기 탔을 때 닫힘

버튼을 눌렀다고 얼마나

 이득을 볼까요?

커피 나오는 입구에

 손을 넣고 있으면

커피가 더 빨리 나올까요?

컴퓨터 부팅 속도의 차이를

운운하는 사람이 정작 타자를

독수리 타법으로 치고

있다면 어떨까요?

 비행기를 가장 빨리 타든,

늦게 타든 상관없이 비행기는

똑같은 시간에 출발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서두르는 마음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일까요?

 좀 더 뒤의 시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앞에 있는 시간에만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늘 이렇게 급하게 매달리다보니

마음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삶이 후회투성이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코앞에 있는

시간에만 매달리는 삶이 아니라,

 조금 더 멀리를 바라볼 수 있는

넓은 안목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고,

 내 삶 안의 후회들도

하나씩 줄여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두 여인이 등장합니다.

바로 예수님을 집으로 모신

마르타와 그의 동생 마리아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초대했기에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만 있을 뿐이었지요.

이 모습이 밉고 얄미웠나 봅니다.

 그래서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에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마리아를 칭찬하십니다.

마르타가

잘못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눈앞의 일에만 매달려서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음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눈앞의 일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일에 집중하고

 그 말씀을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좋은 몫을

선택했다고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눈앞의 일에만 매달려서

염려하고 걱정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보다는 좀더 넓은 안목을 키워서

하느님 나라의 일을 바라보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역시 주님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 재능이 아무리

평범하게 보일지라도.

그의 특성인 재능을 올바로

 사용하면 전 인류를

위한 것이 될 수 있다.

(존 러스킨)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사셨던 아시시.

에픽테토스의 글을 통해...

“동시에 자기 마음과 세상의

행복에 대해 신경 쓸 수 없다.

 세상의 행복을 원하면

마음을 버리고,

마음을 지키고 싶으면

세상의 행복을 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항상

둘로 쪼개질 것이며,

둘 중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네가 세상의 어떤 일로 불안하거나

혼란스러울 때,

언젠가는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러면 전에 아주 큰 불행처럼

보이고 너를 불안케 했던 일이

걱정할 가치가 없는 그저 그

런 불쾌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스토아 학파의 대표적

철학가라고 할 수 있는

에픽테토스의 글입니다.

 2000년 전의 글이지만,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철학가의 글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가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불행이

 늘 함께 했다고 합니다.

평생을 노예로 살았고,

류머티즘으로 인해

큰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이 불행을 신에 대한 사랑과

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견뎌내면서 일상적

 삶의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가르쳤던 것이지요.
고통과 시련 속에서

우리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오히려

 내 마음을 성장시킬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가장 사랑하셨던 십자가.

그래서 예수님과 똑같이 사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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