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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0.0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05 조회수1,156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6년 10월 5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제1독서 갈라 2,1-2.7-14

형제 여러분,

1 십사 년 뒤에 나는

바르나바와 함께

 티토도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2 나는 계시를 받고

그리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민족들에게

선포하는 복음을 그곳

주요 인사들에게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전에 한 일이 허사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7 그들은 오히려 베드로가

할례 받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듯이,

내가 할례 받지 않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8 할례 받은 이들을 위하여

 베드로에게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 주신 분께서, 나에게도

다른 민족들을 위한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9 그리고 교회의 기둥으로

여겨지는 야고보와 케파와

요한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을 인정하고,

친교의 표시로 나와 바르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이들에게

가기로 하였습니다.
10 다만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기로 하였고,

나는 바로 그 일을

 열심히 해 왔습니다.
11 그런데 케파가

안티오키아에 왔을 때

나는 그를 정면으로

반대하였습니다.

 그가 단죄받을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12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오기 전에는 다른 민족들과

 함께 음식을 먹더니,

그들이 오자 할례 받은 자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몸을 사리며

다른 민족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13 나머지 유다인들도

그와 함께 위선을 저지르고,

 바르나바까지도 그들과 함께

위선에 빠졌습니다.
14 그러나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에 따라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케파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다인이면서도

유다인으로 살지 않고

이민족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민족들에게는

유다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복음 루카 11,1-4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제가 오래전부터

쓰고 있었던

태블릿 PC가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 웬만한 것은

스마트폰으로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이 태블릿 PC를

자주 사용하지 않게 되더군요.

그런데 며칠 전에 급하게

사용할 일이 있어서 찾았고,

전원 버튼을 눌렀음에도

 불구하고 화면에 그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고장 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이 태블릿 PC의

충전식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어서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최고 성능의

최신식 컴퓨터가 있습니다.

그런데 연결할

전원이 없다면 어떨까요?

 또한 최신형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저의 경우처럼

충전되어 있지 않다면 어떨까요?

에너지원이 없으면 그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해도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컴퓨터는 비싼 고철덩어리 일뿐이고,

스마트폰은 종이를 눌러놓는

문진 정도로밖에 쓰지 못할 것입니다.
전원이 연결되고 또 충전되어

있어야만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전원도 연결되지 않고,

또 충전도 시키지 않고서는

작동되지 않는다고 이 기계가

엉터리라면서 소리치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정신 차려! 네가 문제지

기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야.”
우리는 주님께서

 불평불만을 많이 합니다.

 나를 보살펴 주시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과 차별한다면서

계속해서 주님께 문제가

있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요?

솔직히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당신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기계에

에너지원이 공급되고 충전되어

 있을 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듯이,

우리 역시 주님과 연결되고

주님의 힘으로 충전되어야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주님과 아무런 연결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불평불만만 던지고 있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주님과의 연결 방법은

바로 기도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던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 나오듯이

 ‘주님의 기도’를 직접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 기도만 잘 바쳐도 주님과

연결되어 힘을 낼 수 있고,

용기 있게 세상 안의 어려움들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주님의 기도를 얼마나

정성껏 바치고 있을까요?

그냥 바치라고 하니까 습관적으로

바치는 기도, 또 억지로 바치는

 기도는 아니었을까요?
이 기도를 직접 가르쳐주신

님의 사랑을

기억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우리와 연결되고

우리를 당신 힘으로

충전시킬 수 있는 기도를

직접 가르쳐 주시는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때 분명히 정성껏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성으로

주님과 연결되고 충전될 때

불평불만의 모습에서 벗어나

힘과 용기를 얻어 힘차게

살아가는 멋진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경청의 ‘경’자는

 ‘기울일 경’이다.

몸을 기울여서 들어야

진짜 경청이다.

(김재원)

예수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 앉으셨다는 바위.

스팸전화 대처법

인터넷을 보다가

  ‘스팸전화 대처법’이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대처하라고 하더군요.
1. 보험회사에서 전화 왔을 때:

"여기도 보험회사입니다."
2. 초고속 인터넷 권유전화!“

"여기 한국통신입니다."
3. 대출권유 전화:

"여기도 대출회사입니다."
이렇게 대처하면

 바로 끊는다고 합니다.
귀찮은 스팸전화지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인데도

  상관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그들의 재주가 정말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들으면 솔깃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따라서 이런 스팸전화는

그냥 끊어버리는 것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위와 같은 방법도 있지만,

“죄송합니다.

저하고는 상관없습니다.”

라고 그냥 끊어도

 똑같은 전화가 다시 반복해서

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 죄의 유혹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접하면 접할수록 빠지고

 싶은 것이 죄의 유혹이지요.

그래서 초반에 “안 합니다.”

라고 과감하게 뿌리쳐야 합니다.

이스라엘 주님의 성당에 붙어 있는

우리말 주님의 기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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