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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주님은 벽돌을 싫어하신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05 조회수1,299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6년 다해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

독서: 갈라티아서 3,1-5







십자가에 못박히는 예수


안젤리코 작, (1450), 프레스코, 169x134 cm, 피렌체 성마르코 박물관

 

 

구약에서 거룩한 곳, 즉 제단을 쌓을 때에는 구운 벽돌이나 다듬은 돌로 만들어서는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자연 그대로의 것을 좋아하시지 인위적 노력이 가미된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밑의 두 구절은 구운 벽돌 대신 일반 흙으로, 정을 대 다듬은 돌 대신 거친 자연적인 돌로 제단을 만들라는 규정입니다.

너희는 나를 위하여 흙으로 제단을 만들어, 그 위에서 너희의 번제물과 친교 제물, 그리고 양과 소를 바쳐라.”(탈출 20,24)

너희가 나를 위하여 돌로 제단을 만들려거든, 다듬은 돌로 쌓아서는 안 된다. 너희가 정을 대면 제단이 부정하게 된다.”(탈출 20,25)

그러나 일반 흙은 아무리 잘 다지더라도 구운 벽돌보다는 불안정하고, 또 다듬어진 돌로 쌓는 것은 안정적이겠지만 삐뚤빼뚤한 자연 그대로의 상태의 돌로 제단을 쌓으면 역시 불안정할 것은 뻔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신을 섬기는 제단이 인간의 힘에 의해 세워져야만 굳건하다는 생각을 빼어버리시기 위해 주님은 불안정한 상태 그대로 제단을 쌓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인간은 인간 나름대로의 생각이 커져서 벽돌을 만들고 역청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지은 탑이 바벨탑이고, 그렇게 벽돌을 만들던 때가 이집트 노예 살이 할 때였습니다. 인위적인 생각이 강해질수록 주님은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사실을 잊고 성전을 좋은 벽돌로 쌓았지만 결국 그런 성전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마태 24,2)라고 예수님께서 성전을 두고 하신 말씀은 그들이 그토록 자신했던 벽돌을 만들어 세운 성전이 부질없이 허물어질 것임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믿음이란 바로 우리 있는 그대로를 주님 앞에 내어놓고 나머지는 주님의 자비에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율법이란 내가 어떤 행위를 해야 그분께서 좋아하실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에 갈라티아인들이 믿음에 의해 성령을 받기는 하였지만 차차 율법주의에 젖어들어 다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둥의 말을 믿게 된 것에 바오로 사도는 격분하게 된 것입니다.

아담이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을 아무리 가려도 그것은 주님 앞에 설 수 있기 위해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인위적으로 가리는 모습이 율법주의입니다. 미사에 안 빠지고 나온다느니, 묵주기도를 하루에 몇 백단을 한다느니, 이웃에게 얼마를 나누어 주었다느니, 선교에 어느 정도 시간을 할애한다느니 하는 것은 주님 앞에 설 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그런 것을 해야 주님께서 받아주신다고 믿는 것이 율법주의입니다. 바리사이가 그렇게 성전에서 기도했다가 주님께로부터 의롭지 못하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오직 주님의 자비에 의존한 세리가 의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세례 받을 때 성령을 받았는데 그 성령을 받을 때 과연 그런 신앙의 행위들을 했기 때문에 받은 것일까요?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세례 받을 때의 예비자들은 오직 복음을 향한 믿음의 고백으로 그 어느 신자들보다도 가장 충만히 성령을 받습니다. 행위는 그 은혜에 감사해서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아야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모가 난 돌일지라도, 약한 흙에 불과할지라도 주님은 그것으로 쌓인 제단을 사랑하십니다. 인위적인 노력이 주님의 은혜를 받는데 어떠한 도움을 준다는 생각을 버려야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도 율법학자, 바리사이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냥 오늘 여러분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 주십시오.

너는 지금 너의 모습으로 충분해!”

이런 마음을 갖게 되면 이웃에게도 너그러워지게 될 것입니다. 왜 바꾸려고 합니까? 괜찮습니다. 나도 괜찮고 배우자도 그 모습 그대로 괜찮고 이웃들도 지금 모습이 참 좋지 않습니까?

저는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이명도 심하게 들립니다. 만약 이런 불편함을 바꾸려 했다면 저는 몸 전체를 미워해야 했을 것입니다. 몸 전체를 받아들이려면 그 몸 가운데 부족한 부분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합니다. 괜찮다고 여기니 크게 불편하지 않고 이젠 신경 안 쓰면 평상시엔 이명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주님은 선악과 하나 따 먹었다고 화를 내실 분이 아니십니다. 그냥 벌거벗은 채 그분 앞에 나아가도 그분은 우리를 따듯이 안아주시고 우리 목에 걸린 선악과를 빼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기에 너무나 충분하십니다. 괜찮으니까 너무 노력하려 들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에게 너그러우면 주님의 너그러움을 알게 되고 이웃에게도 너그러워지게 될 것이고 결국 너그러운 주님 품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모습 그대로의 당신을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랑하고 계십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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