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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8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09 조회수1,331 추천수11 반대(0)

지금은 누구나 지니고 있는 것이 핸드폰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핸드폰을 가졌던 것은 지금부터 21년 전입니다. 국산은 없었고, 모토롤라 제품을 샀습니다. ‘삐삐를 가지고 다니다가, 동창들이 핸드폰을 마련하자고 해서 큰마음 먹고 장만했습니다. 그리고 핸드폰 끝 번호는 축일로 정했습니다. 저의 핸드폰 끝 번호는 0929입니다. 핸드폰은 컸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기억나는 핸드폰 선전이 있습니다. ‘걸리니까 걸리버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애니콜입니다. 자장면 시키신 분,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잠시 꺼 주셔도 좋습니다.’ 21년 시간이 흐르면서 핸드폰의 기능은 무척 다양해졌습니다. 단순히 전화를 걸고 받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카메라 기능, 교통카드 기능, 음악을 듣는 기능, 내비게이션 기능, 신용카드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연결된 핸드폰은 각종 정보를 검색할 수 있고, 유용한 애플리케이션은 생활에 편리함을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핸드폰의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에 있던 본당에서 설립 2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작은 공소였던 성당은 20년이 지나면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초대 신부님은 성당과 사제관을 마련하였습니다. 저는 식당과 주차장, 손님들이 지낼 수 있는 숙소를 마련하였습니다. 후임 신부님은 넓은 마당을 마련하였습니다. 다음 신부님들은 신앙의 꽃을 피우는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고 있습니다. 교우들의 땀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고, 모든 것이 하느님의 축복이었습니다.

 

과학과 기술만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명과 사회만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성, 우리의 감성, 우리의 신앙도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공자님은 그러한 삶을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은 그러한 삶을 팔정도(八正道)’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이라는 아름다운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들 마음의 밭에 뿌려진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세상의 것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마치 자갈밭에 뿌려진 씨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고서 살고자 하지만 유혹 앞에 흔들리는 사람은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고서 삶이 변하고, 이웃에게도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좋은 밭에 뿌려진 씨와 같아서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신앙인은 3단계의 과정을 거쳐서 영적인 성장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운전의 3단계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준법운전입니다.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운전입니다. 빨간 불에는 서고, 중앙선을 침범하지 않고, 규정 속도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런 운전만으로도 우리는 교통사고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주일미사를 잘 지키고, 성경 말씀을 자주 읽고, 교무금 헌금을 기쁜 마음으로 내는 신앙인과 같습니다.

 

두 번째는 안전운전입니다. 교통법규는 당연히 잘 지키고, 무리한 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장거리 운전을 할 경우에는 중간에 잠시 쉬고, 차량 정비를 자주하고,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하는 것입니다. 이런 운전을 하면 인생도 푸른 신호등처럼 늘 맑고 푸른 날이 될 것입니다. 주일미사는 물론이고 평일미사도 자주 참례하는 분, 본당의 단체에 가입을 해서 봉사하는 분, 각종 피정과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 소공동체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분입니다. 이런 분들이 있으면 본당도 기쁨과 평화가 넘쳐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양보운전입니다. 급한 사람이 먼저 갈 수 있도록 양보해 주는 운전, 몸이 아픈 이웃을 병원으로 모셔다 드리는 운전, 짐을 들고 가는 어르신을 태워 드리는 운전, 고장 난 차를 보면 내려서 도와주는 운전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운전은 단순히 이동수단이 아닙니다. 운전이 곧 선교이고, 운전이 곧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것처럼 나의 삶에 다가오는 시련과 고통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살지만 이미 하느님 나라에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나의 신앙은 어디에 속하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엘리사의 도움으로 나병에서 치유된 시리아 사람 나아만은 이제 몸만 건강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도움으로 치유된 사마리아 사람도 이제 몸만 건강해 진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러한 삶을 복음의 기쁨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나는 선택된 이들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은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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