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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6년 10월 10일(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받지 못할 것이다)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10 조회수988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6년 10월 10일

[(녹)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말씀의초대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으니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가

 악하다고 하시며,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라고 하신다.

◎제1독서◎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4,22-24.26-27.31─5,1
형제 여러분,

22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23 그런데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에 따라 태어났고,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의 결과로

태어났습니다.
24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계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시나이 산에서

나온 여자로 종살이할

자식을 낳는데,

바로 하가르입니다.
26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의 몸으로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27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즐거워하여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기뻐 소리쳐라,

환성을 올려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버림받은 여인의 자녀가

 남편 가진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3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5,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3(112),1ㄴㄷ-2.3-4.5ㄱ과

 6-7(◎ 2 참조)
◎ 주님의 이름은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 찬양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양하여라, 주님의 이름을.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 주님의 이름은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

주님의 이름은 찬양받으소서.

주님은 모든 민족들 위에 높으시고,

그분의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네.

◎ 주님의 이름은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 누가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 같으랴?

 하늘과 땅을 굽어보시는 분,

 억눌린 이를 흙먼지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불쌍한 이를 잿더미에서

 들어 올리시는 분.

◎ 주님의 이름은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복음환호송

시편 95(94),7.8
◎ 알렐루야.
○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 알렐루야.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묵상◎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이란 무엇일까요?

 악한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진노의 선포일까요?

아니면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자비와

사랑의 부르심일까요?

그것은 요나의 모습 속에

잠시 들어가 보면 압니다.
요나는 니네베로 가서 회개를

촉구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동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공평하신 하느님답지

못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주님의 명을

거스르고 도망치지만,

풍랑을 만나고,

바다 속에 던져져서

고래 배 속에 사흘간

잠들어 있다가 결국

 주님의 뜻대로

니네베로 보내집니다.
요나 안에 내가 있습니다.

내 판단과 신념이 옳다고

 생각하면 하느님의 부당함과

그분의 자비가 합당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악인들이 여전히 잘살고,

양심을 지키는 이들이

무시당하는 불공평한

세상을 그냥 놓아두시는

하느님이 못마땅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런 모자란 나를 통해서도

당신 자비와 사랑을

선포하십니다.
내가 하느님을 외면하고,

그분의 계명을 무시하고

, 내 욕심대로 살아도

하느님께서는 나를 곧바로

 벌하지 않으십니다. 교

회가 가르치는 불편한

 윤리 규범이나 신자로서의

의무들이 못마땅할 때에는,

차라리 하느님을 몰랐더라면,

성당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속 편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우리의 아집을 곧바로

질책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은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려는 것이었고,

지금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달리십니다.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도

 아집과 편견에서 벗어나,

한없이 참고 기다려 주시는

하느님의 넓은 자비와 사랑에

의탁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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