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육체는 율법을 좋아하고 영은 자비만을 믿습니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10 조회수1,724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6년 다해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 할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

독서: 갈라티아서 5,1-6






 예수에게 우유스프를 먹이는 성모



다비드(David, Gerard) 작, (1520), 오크 유화, 35 x 29 cm, 브뤼셀 왕립미술관

 

 

마더 테레사가 호주를 방문했을 때 호주의 한 젊은 프란시스코 수도회 수사님이 데레사 수녀님에게 그녀의 수행원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수사님은 훌륭한 데레사 수녀님을 매우 가까이서 모실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부풀어서 그녀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보고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줄곤 그녀 가까이에 있었으나 말 한마디 건넬 기회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데레사 수녀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테레사 수녀는 뉴기니아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수사님은 너무 실망하였습니다. 그래서 수녀님에게 부탁했습니다.

뉴기니아로 가는 저의 여비를 제가 부담한다면 비행기 옆자리에 앉아 말씀을 나누며 배울 수 있겠습니까?”

데레사 수녀님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뉴기니아로 갈 항공료를 낼만 한 돈을 갖고 있어요?”

.”

그러면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세요.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어떤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 속해있느냐에 따라 좋아하는 것이 다릅니다. 사람은 육체의 욕망에 속해 있을 수 있고, 주님에게 속해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욕망에 속해있으면서 주님의 뜻을 따르려고 한다면 절대 온전히 주님의 뜻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위의 수사님이 자신이 믿는 무엇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마더 데레사 수녀님에게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그 수녀님을 온전히 만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디에 속해있느냐가 그 사람을 규정합니다. 그 수녀님을 만나는 것보다 그 수녀님을 만났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면 그 수녀님을 만나도 껍데기밖에는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육체적인 인간이 되고 그 육체에 속했을 때 자신의 몸을 무화과 잎으로 가린 것은 이제 율법에 속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육체와 율법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율법은 믿음이 아니라 행위로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경향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자녀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는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한다든지 혹은 어떤 좋은 행위를 해서 부모의 칭찬을 들으려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들이 오히려 더 부모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 사람은 육체에 속해있는데 그 안에 갇혀 있으면서는 절대로 상대의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라의 종이었던 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이 옛 계약에 묶여있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해석하였고, 자유인이었던 사라에게서 태어난 이사악이 새 계약의 백성인 교회라 이해하였습니다. 하갈의 신분이 종이었던 것처럼 종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도 종이고, 율법에 목을 매는 이스라엘도 종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인에게서 태어나야 자유인이 되는데 율법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신 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에게서 태어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피의 덕분으로 모든 율법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려고만 하다가는 그 율법에 또 말려들고 맙니다. 그런데도 갈라티아 그리스도교 인들은 다시 할례의 규정을 따르려고 하고 있으니 바오로 사도가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의 자녀였다가 믿음의 자녀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이스마엘이 이사악의 상속권에 참여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방법은 있습니다. 이스마엘이 과감하게 어머니를 버리면 됩니다. 이스마엘이 끝까지 하갈을 어머니로 생각하면 그녀에게 속해 아무 상속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어머니를 바꾼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같지만 사실 우리도 어머니를 바꾼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다른 어머니에게서 새로 태어나는 일이 없다면 절대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어머니나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으면 하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을 위해서는 이와 같이 이전에 믿어오던 무언가를 버리고 새로운 어머니에게 속해야만 합니다.

 

육체도 하나의 어머니이고 그리스도도 하나의 어머니입니다. 육체는 율법을 좋아하고 그리스도는 믿음을 좋아하십니다. 육체는 율법을 강조하며 살다가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자신도 책망하고 이웃도 심판합니다. 그리스도는 그래도 괜찮아!”라고 하시며 돌아온 탕자를 기다리시는 자비의 아버지처럼 우리와 이웃들을 자비로 대하고 만듭니다. 우리는 어디엔가는 속해야합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의 상속을 받는 쪽은 믿음의 법을 어머니로 두고 그 안에 속한 사람뿐입니다. 어머니를 바꾸어야하고 내 삶의 패턴을 바꾸어야합니다. 그 누군가에게 속한다는 말은 어머니를 바꾼다는 말인데 어머니가 바뀌면 모든 삶 자체가 변화됩니다. 육체에 속하지 말고 영에 속해야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율법만 생각하고 영에 속한 사람은 주님의 자비만을 바랍니다.

따라서 율법주의를 좋아하는 육체의 욕망의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육체를 떠나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바로 광야에서 사십 일간을 단식하며 기도하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영과 육은 반대이고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사이기에 우리는 육을 미워하고 멀리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속해왔던 육체를 떠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육체가 좋아하는 것이 좋아지지 않고 육체가 바라는 것을 바라지 않을 때, 육체가 원하는 모든 것에 대한 맛을 잃었을 때 영에 속해 있다는 것을 확신해도 됩니다. 그래서 사라의 자녀가 되면 자유인이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육체는 율법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자비만을 믿습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