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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늘을 내려주시어.../ 고 민요셉신부 * - 펌
작성자이현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10 조회수1,488 추천수2 반대(0) 신고

 

주: 10월 11일, 선종 12주기를 맞이하는 고 민요셉신부님을 추모하며 그분의 글을 펌해드립니다.


                                                                 (등산을 좋아하셨던 민요셉신부님)

 

                                                            하늘을 내려주시어 / 민요셉신부


  1997년 11월 28일 금요일. 저는 전라도 땅 승주, 송광사를 찾았습니다. 송광사는 조계산을 끼고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승보사찰입니다. 종무소를 찾아 도담 스님을 물으니 외인출입금지 라고 적혀 있는 사찰로 안내해 주십니다. 한겨울을 지낼 김장을 하느라 부산을 떠는 스님들을 지나 큰스님이신 현고 주지 스님이 머무는 토방으로 들어섭니다. 안내한 스님이 안채를 향하여, "스님, 스님" 하고 부르니 미닫이문을 열고 나오는 폼이 영락없는 도담 스님입니다. 주지 스님의 시자(비서) 소임을 받은 스님을 뵙는 마음이 속세의 연을 떨구지 못한지라 매우 반가웠습니다. "어이구, 이게 누구십니까?" 그날 따라 삭발례가 있은 지라 삭발한 스님의 머리가 푸르스름한 녹이 끼어 있는 동경인 듯 송광사 풍경이 그대로 들어 앉아 있었습니다. 승복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스님은 덥석 그 크신 손으로 악수를 해 오셨습니다. 방으로 안내한 스님은 먼저 다기를 준비하며 물을 끓이십니다. "오늘따라 삭발례를 한 탓에 먹을 것이 많지요" 말씀하시며 조청에 찍어 들라며 쑥떡을 내어놓고 곁들여 감, 포도 등을 가져오셨습니다.

 

   도담 스님과는 저는 함께 수도생활을 했습니다. 함께 살다가 저는 필리핀으로 떠났고 스님은 일광 삼덕 마을, 예수 마리아 성심 수도원에서 사셨습니다. 그러다 귀국해 보니 스님은 수도원을 떠나 또 다시 출가하셨습니다. 양로원, 평화의 집 등에서 봉사하다 다시 속세를 떠나 출가하여 스님이 되신 것입니다. 스님은 유난히 산을 좋아하셨습니다. 그럴려고 그러셨는지 그렇게 좋아 하던 산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소식을 모르다 연이 닿았습니다. 그래 스님이 계시는 송광사를 찾았고 그렇게 다시 만난 것입니다. 코카콜라 한 병으로 세상을 정복하며 웃긴 영화 <부쉬맨>의 주인공을 빼 닮아 부쉬맨이라 불리던 기골이 장대하고 성품이 고운 사람이 스님이었습니다.

 

   송광사 구석구석으로 화선지에 한자말로 단순하게 '下心' 이라고 쓰여진 표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下心이라? 그래 도담 스님께 여쭈었습니다. 
  "스님, '下心'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지요?"
  "예, 신부님. 불교 용어에 '불심즉하심(佛心卽下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佛心, 즉 부처님 마음은 下心이라는 뜻이지요. 下心은 말 그대로 '마음 아래'로 풀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심'(心), 즉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란 시비(是非), 즉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하며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는 마음을 말하지요. 그러한 상태, 바람 잘 줄 모르고 언제나 야단스러운 상태를 '마음'으로 보지요. 그렇게 야단스러운 마음에 머물지 마라,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는 마음 저 깊은 곳으로 내려가라는 뜻풀이가 '下心'이지요. 마음을 비우라는 뜻으로 들으시면 고맙겠습니다."

 

   "下心, 즉 마음을 비워야 학습할 수 있습니다. 배울 수 있다는 말이지요. 마음을 비운 상태라야 가르침을 들을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下心, 즉 마음을 비우는 데는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하근기, 중근기, 상근기가 그것입니다. 성서 말씀에 밭에 뿌려진 씨앗의 비유에서 마른 땅이나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이 열매 맺지 못하고 말라 버리고,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백 배 열매 맺듯이 가르침, 즉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는 下心을 살아야 합니다. 고지식하고 세상의 상식대로 살려고 하는 그러한 마음가짐이라면 여전히 가장 모자라는 단계인 하근기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 보다 좀 나아지면 중근기에 속하는 것이고, 마침내 상근기에 이르면 마음히 허허로운 下心에 살 게 되니 바로 깨닫게(覺) 되는 것입니다."

 

   스님의 법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교회에서 가르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 인간이 영적으로 성숙해 나가는 과정을 정화-조명-일치의 '세 가지 길'로 표현하는데, 이 세 가지 길을 거쳐 마침내 하느님과 하나되는,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영적 성숙의 길을 말합니다. 이와 유사하게 법문에서는 下心으로 가는 길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하여 떠나는 여행의 출발점을 불교에서는 '下心'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佛心卽下心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지 우리에게서 배웠고 또 배운 대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더욱더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에서는 "주님, 당신의 길을 제게 보여주시고, 당신의 지름길을 가르쳐 주소서. …당신의 진리 안을 걷게 하시고, 그 가르치심을 내려 주소서" (시편 24)라고 노래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합니다" (루가 21, 34).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下心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下心을 살아갑시다. 혜화동에서 살던 신학생 시절에 下心을 살지 못해 힘들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참 많이도 고민하였습니다. 성서 말씀 속에서 길을 찾아 보고, 묵상과 명상 속에서도 길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을 해도 답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살아야 할 길이 계시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작정했습니다. 그 때 얻었던 말씀을 <하늘을 내려주시어>라는 한 편의 시로 정리했었습니다:

 

    하늘을 내려주시어 / 민요셉신부 

 

나로 하여

수도자의 길을 가게 하는 이

뜀박질해 가고픈 여러 갈래 길이

날 설레게 하는데

 

나로 하여

사제의 길을 가게 하는 이

야단스럽고 굳어져 버린 마음이

모로 드러눕는데

 

단순하여라 가난하여라 길들이며

나로 하여

작은 자의 길을 가게 하는 이

 

표적 없이 흐린 눈

울려대는 귀

감성에 익숙해진

나로 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하는 이

 

아 -

하늘을 내려주시어

나로 하여

나로 일어서도록

무등 태워 주시는 이

 

  사람이 되는 일,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하여 도를 닦는 일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下心을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下心을 산다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또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습니다. 어떤 처지에서 어떤 양식의 삶을 살든 결국 나 스스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下心을 산다는 것은 나 혼자만이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참 외로운 길입니다. 그래 나 스스로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라면, 내가 걸어가야만 할 길이라면 어쨌거나 下心을 살아야겠습니다.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어 봅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한 번 헤르만 헤세의 시 <혼자>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사는 길이 성불하는 길인지 부처님 오신 날에 깊이 묵상해야겠습니다. 성불합시다. 下心합시다.

About-Face!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출처: 고 민요셉신부의 ‘하느님의 결혼식’ 중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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