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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6년 10월 12일(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12 조회수96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6년 10월 12일

[(녹)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말씀의초대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며 성령을 따라

살아가자고 권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위선적인

 바리사이들과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는 율법 교사들에게

불행하다고 선언하신다.

◎제1독서◎

<그리스도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욕정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5,18-25
형제 여러분,

18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20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21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미 경고한

그대로 이제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23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24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25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2.3.4와 6

(◎ 요한 8,12 참조)
◎ 주님, 당신을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이다.
○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주님, 당신을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이다.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주님, 당신을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이다.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 주님, 당신을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이다.

◎복음환호송◎

요한 10,27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 알렐루야

◎복음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2-46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2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43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44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45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46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묵상◎

예수님께서는 작정하고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에게

 이른바 독설을 뿜어내십니다.

“불행하여라!”라고 선언하시고,

그 이유를 그들이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며,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

이라고 구체적으로

 지적하십니다.

 오죽하면 속이 불편한

율법 교사 한 사람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라는 항변을 했을까요?
치부를 들추어내고,

상대방을 면전에서

모욕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분노를 자아냅니다.

 사람들 앞에서 벌거숭이가

되어 버린 당혹감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분노와

앙심을 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을

변화시키려면 상대방의

‘리듬’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잘못을 비난하고

훈계하기보다는

상대방의 감정의

리듬에 따라 먼저

장단을 맞춰 주고 공감해 주면,

사람들은 현실에 대한 왜곡된

아를 쉽게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완고해진 이들,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힌

이들에게는 가끔 돌직구를

날리는 충격 요법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선을 위해

일해야 하는 이들,

사람들에게 도덕적 표양과

지도자로서의 표양을

보여야 하는 이들에게

더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바리사이나

율법 교사들에게 개인적인

감정의 분노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의로운 분노[義憤],

또는 공공의 분노[公憤]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상식과 기본이 무너진

우리 사회에 그리스도인이

보여 줄 것은, 개인적인

분노나 원한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공익을 해치는 악에

함께 대항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덕은 하느님 앞에서

순종하는 것이지,

 불의에 순종하고 이기적

 자기애에 빠지는 것이

 아님을 명심합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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