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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양심을 저버리는 그 어떤 불의에도 /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13 조회수1,295 추천수0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역사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던 예언자는 사회의 지도자들과 싸워야 했고, 더러는 군중과 맞서야 했기에 언제나 수난을 당했다. 하느님 말씀과 세상 욕심이 가는 곳마다 충돌했기에. 그 소용돌이 한복판에 예언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이다. 그러니 교회가 예언자 직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으면 더 이상 하느님의 교회라고 말할 수 없을 게다. 이렇듯 예언자의 삶은 고통 그 차체이었다. 하지만 고통이 싫어 피하려 든다면 말씀을 전할 수 없으리라. 그리하여 그들은 불의에 대해 끝내 말을 아끼지 않았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여기에 정면 승부수로 대어들어 결국은 자신의 말을 내세웠다. 나중엔 자신의 말을 하느님의 말인 양 착각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무서운 일이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끝내 꾸짖으신다. 거짓 예언자로 바뀐 그 실체를 결국은 폭로하셨다. 그러기에 그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제거하려 들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동조하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 불행하여라,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 너희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갈 이들도 막았다.”(루카 11,47-54 참조)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의 위선과 교만을 향한 예수님의 불행 선언은 가혹하기 그지없다. 명색이 유다 사회에서 존경받는 이들인데 군중들 앞에서 그렇게 모욕을 당한다면, 그들이 독한 앙심을 품어 예수님을 없애려고 모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이러한 바리사이들의 태도와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이렇게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글쎄다. 과연 그럴까? 우리 세대가 박해하고 있는 예언자들은 누구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답이 보인다. “나에게 옳은 말 해 주는 이를 어떻게 맞는가? 진리 편에서 사회 정의와 공동선을 부르짖는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가톨릭 사회 교리 가르침을 실천하는가?” 예수님께서 이 시대에 태어나시더라도, 거부와 박해를 당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요 비극이다.

 

사실 살다보면 누구나 억울하게 오해받고 오해하기도 한다. 그걸로 앙심과 보복이 떠오른다면 조용히 극복해야 할 게다. 감정에 휩쓸리면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로 돌아간다. 인내와 기도로써 주님의 뜻을 헤아리려 애쓴다면 예수님을 닮는 행동이 된다. 내 인생을 떠받칠 또 하나의 십자가를 지는 행위가 되리라. 허나 모르면 엉뚱하게 대한다.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도 예수님을 몰랐기에 독한 앙심으로 옭아매고 곤경에 빠뜨리려 했다.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을 망가뜨리러 오신 분으로 오해했기에.

 

양심을 지키고 옳은 일에 굶주리며 정의에 앞장서고, 진리를 외치며 불의와 맞설 수 있는 용기는 아무나 갖지 못한다. 막상 내게 닥칠 위협이나 보복을 생각하면 차라리 무관심하거나, 내 할 일만 잘하고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지도. 어쩌면 있어야할 이런 정의가 사라지기에 불안한 조직이 되기도 한다. 신앙인들도 이런 예언자의 주장인 진리와 정의의 삶을 가끔은 피하려하기에 악한 기운이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

 

그들은 무관심했던 자신들이 겪게 된 이 사회의 엄청난 모순과 권력의 폭력을 좌시할 수 없음을 몸으로 직접 체험했기에. 잘못된 정책 입안, 공직자들의 안일함과 부정부패, 독점적 경제 체제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부 기득권층의 욕심으로 바닥 인생을 겪은 이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결심으로 거리며 광장으로, 그리고 온라인 사회 관계망을 통한 진실 알림이로 목소리를 낸다. 내가 겪지 않았다고 없는 일이 아니다. 혹시 우리도 편견에 사로잡혀 나는 물론, 세상의 예언자들까지도 침묵의 벽으로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진리 앞에 용기 지닌 이들이 쾌나 많다. 권력 앞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고 억눌린 이들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헌신적으로 투신하는 이들이 있다. 이렇게 언제 어디서나 어느 단체든 조직이든 예언자들은 존재해야 할 게다. 그들을 통해 주님께서는 정의에 대한 당신 가르침을 주시기에. 결국은 이 오해가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끌었다. 그분은 당신 죽음을 직감하셨지만 타협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일만을 꿋꿋이 하셨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때로는 억울한 오해를 받을지라도 정의의 양심을 저버리는 그 어떤 불의에도 그 옛날 예수님마냥 당당하게 맞서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http://blog.daum.net/big-llight 

태그 양심,불의,예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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