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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0.1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13 조회수2,085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6년 10월 13일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제1독서 에페 1,1-10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에페소에 있는 성도들과

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사는

 신자들에게 인사합니다.

 2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8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복음 루카 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7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

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1990년 초반에 우연한

기회에 PC 통신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채팅창을 통해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고,

새로운 만남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전화요금의

폭탄을 맞기도 했지만,

그래도 쌍방향 소통으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정보

소통 방식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컴퓨터 프로그램도 공부를 하고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빠다킹’이라는 닉네임으로

아직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처음 인터넷에서 저의 글을

올렸을 때를 떠올려 봅니다.

그때에는 제 글에 대한 반응에

참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었는지,

또 댓글을 통해서 어떤 말을

 써주시는지를

꼼꼼하게 읽었습니다.

많은 분이 보았으면 괜히

기분이 좋고, ‘좋아요’ 버튼이

많이 눌러지면 신나는 날이고,

제 글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댓글을 달아주면 큰 힘이

솟아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너무나 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것이

옳지 않은 것 같아서 새벽에

묵상 글을 올리고서는 거의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심지어 E-Mail도 잘 확인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무튼 저도 그러했듯이,

누구나 자신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게 되면 큰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글을

작성해주길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긍정적인 단어 하나에도 힘이

 불끈 솟아오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무조건 상대방이 원하는

말과 보고 싶어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이것이 가장 편하고

쉬운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 사람을 무조건 위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그래서

진정한 힘이 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 역시 어제와

마찬가지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불행선언입니다.

이런 불행 선언을

듣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기분이 좋겠습니까?

 당시에 좋은 평가만을 받았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더욱 더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말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에, 그들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말씀을

직접 해주신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는

 진정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면,

그들을 향한 불행선언은

행복선언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앙심을 품고

그분을 몰아대는데

 온 힘을 기울일 뿐입니다.

더 큰 불행선언의

주인공이 될 뿐입니다.
우리 역시 다른 이로부터

 부정적인 말보다는

 칭찬 등의 긍정적인 말을

 더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내 자신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말이라면

부정적인 말에 앙심을

 품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약속해주신 행복선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

 첫인상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그 정확성은 그리

신뢰할 만하지 않다.

(이드리스 샤흐)

제가 운영하는 빠다킹 닷 컴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

(카렌 케이시)

누군가 우리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미소 지을 수 있고,
또 언젠가 실패했던 일에
다시 도전해볼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듯이
소중한 사람이

우리 마음 한구석에 자

리 잡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며...
활기를 띠며 자신의 일을

성취해나갈 수 있어요.
우리는 누구나 소중한

사람을 필요로 해요.
또한 우리들 스스로도

우리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일에서도

두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듯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든

외로움은...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을

느낄 때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그 누군가에게

참으로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랑을 유지하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수난과 죽음을 당하신 주님 덕분에

우리가 소중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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