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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웃에게 증언하는 삶을 /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15 조회수961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게다. ‘다른 이들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다들 생각하고는 있을까? 말만 신자이지 예수님과는 정녕 거리가 먼 이로 여기는 것은 아닐 런지?’ 사실 믿는 우리는 가까이에서 자주 만나는 이웃에게 먼저 주님을 증언하는 삶을 살아야만 할 게다. 그들에게 풍기는 예수님의 향기만이 그들에게 꼭 그분을 향해 머무르게 될 것이기에. 이렇게 무심코 드러내는 말과 행동에서 그분을 증언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게 풍기는 믿음의 향기이리라. 그건 신앙생활의 기간과 교회 안에서 그 어떤 위치에 달려 있지 않다.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실천만이 좌우한다. 그러므로 믿음의 역할은 이차적이며, 믿음에 앞서 하느님의 은총이 늘 먼저다. 여기서 믿는다.’라는 것은 오직 교의를 참된 것으로 인정하여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곧 전폭적으로 하느님을 신뢰하여 그분께 의지하는 것을 말하리라.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다. 우리의 의식과 판단, 행동은 단순한 정신적인 게 아닌, ()의 활동일 게다. 영은 하느님의 숨결이다. 우리 안에 그 영이 부어져 있으며, 신앙인은 믿음 안에서 그것을 느끼고, 그것의 인도에 따라 산다. 그분께서는 믿는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당신을 알게 하시고,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우리가 간직한 희망과 받게 될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신다.

 

배운 것도 없고, 교리 지식도 충분하지 않다고 하느님을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지혜의 샘이시기에. 지혜는 우리의 양심 안에 심어져 있는 하느님 영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이고, 곳간에서 좋은 것을 꺼내듯, 내 안에서 참되고 선하며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는 식별의 은사이기도.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 앞에서 모른다고 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루카 12,8-12 참조)

 

예수님은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이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란다. 성령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영, 얼이다. , 하느님 자신이시다. 하느님이시기에 사랑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시며, 평화이신 게다.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곧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를 박해하는 이들 앞에서 하느님을 증언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걱정할 게 없다.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바로 그 모습으로 당신의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를 보호하시고,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신다니까. 그리하여 우리가 해야 할 말을 성령을 통해 다 알려 주시리라. 그러니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상의 위협에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살면서 예수님 십자가를 거부하고 그분 가르침을 무시하며 내 멋대로 살아도,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바쳐지신 그리스도의 속죄로 우리 죄는 씻어질게다. 하지만 내 안에서 하느님 영을 무시하고 성령의 능력을 믿지 않거나,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을 절망으로 몰아내는 이들은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 가장 큰 죄는 내가 지은 죄가 아닌, 누군가가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서는 것을 방해하며, 사람들에게 성령의 기쁨과 희망을 잃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우리가 달콤한 말로만 얘기하고 설득하는 것만이 증언이 아닐 게다. 삶 자체가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일 때에야 더욱 힘을 갖는 것이리라. 우리가 굳이 말로서 전하지 않더라도 저 이는 믿음을 가진 이라는 확신을 준다면, 그게 바로 증언하는 것일 게다. 반면에, ‘신자라는 자가 어찌 저럴 수가!’라는 느낌을 주면, 어찌 증언하는 삶이라 할 수 있을까? 누가 뭐래도 우리는 삶 전체로 그분을 증언하는 이가 되어야만 할 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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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성령,모독,용서,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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