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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0.1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15 조회수1,201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6년 10월 15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에페 1,15-23

형제 여러분,

15 나는 주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전해 듣고,

 16 기도 중에 여러분을

기억하며 여러분 때문에

끊임없이 감사를 드립니다.
17 그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2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21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복음 루카 12,8-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9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

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10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11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12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어제 선배 신부님께서

본당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성지에 오셨습니다.

 미사 후 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신부님 앞에 앉으니 본당 신자들이

 식사를 접시에 담아서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평소에 먹는 양의

 1/3만 담아서 오신 것입니다.

처음에 담아 오신 양에

깜짝 놀랐습니다.

왜 담다가 말았나 싶었지요.

하지만 곧바로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선배 신부님의 식사 양이

워낙 적었던 것이지요.

그래서일까요?

방금 식사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배고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마다 식사양이

같을 수 없는 것처럼,

나와 상대방은 같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자신의 기준에

 상대방을 맞추려고 합니다.

그 기준이 보편적이라고 해도

밥을 많이 먹는 것이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다른 것을 틀렸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리지외의 아기의

예수 데레사 성녀와

구분하기 위해

대데레사라고 부르는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입니다.

 성녀께서는 중세시대의 인물로,

당시는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날 정도로 교회의 부패와

타락이 심각했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시기에 성녀는 초창기의

 엄격한 수도 생활의 규율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면서

 수도원 개혁을 일으키십니다.

수도자이기는 했지만 과연 여성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너무나 엄격한 규율의 준수라면서

과격파라는 비난을 받는 등 힘든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 수도원 개혁을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성녀께서는 철저히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셨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처럼 성령의

활동을 굳게 믿고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대의 스페인의 거의

모든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15개의 남자 수도원과

17개의 여자 수도원을

창립하는 등

활동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일을 세상에 증거하는데

분명히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다른 이들도

활동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활동하시는 성령이

움직임을 방해하고

 모독하는 것이 아닐까요?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시는 분을

향해서 ‘환자’라는 표현을 하면서,

“너무 종교에

미쳐서 사는 것 아니야?”

라고 비판하십니다.

새로 세례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으신 자매님이신데,

대모님께서 교무금을 너무 많이

낸다면서 적게 봉헌하라고 했다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으시더군요.

이런 식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으십니다.
내 생각과 다를지라도,

 또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한다면 어떨까요?

그때 내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주님의 다양한 활동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행동을 뿌리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뿌리면 성격을 거두고,

성격을 뿌리면 운명을 거둔다.

(G. D. 보드맨)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이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안전하게 가기

운전을 할 때에 반드시

잘 봐야 할 것은

신호등과 표지판입니다.

신호등과 표지판을 보지 않고

멋대로 운전을 하게 된다면

도로는 난리가 날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 남미의 페루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페루의 수도인

리마 시내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난폭 운전에 신호등이나

표지판을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입니다.

차선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2차선 도로에 3대의 차가

나란히 갑니다.

이런 곳에서 과연 운전을

할 수 있을까 싶더군요.

 서로 지켜야 할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거의

무법지대 같기만 했습니다.
그러한 강력한 인상을 담고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였습니다.

하늘에는 표지판이나

신호등도 없고,

길도 보이지 않는데도

목적지에 정확하게

도착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렇게나

비행기가 비행하는 것일까요?

기장 마음대로 또

느낌대로 비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항로가 있어서

그 길로 정확하게 가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가야하는 항로로

정확하게 가야지만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습니다.
주님이 보이십니까?

 보이지 않습니다.

또 내 귀에 직접 대고

 말씀하시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고

또 들리지 않는다고

 아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주님께서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정확하게 지키며

살아야지만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하느님나라에

안전하게 갈 수 있게 됩니다.

어제 성지를 찾아오신

 인천교구의 중3동성당 신부님과 신자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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