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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기도를 꾸준하게 하게 만드는 힘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16 조회수1,795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6년 다해 연중 제29주일


<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을 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신다.>


   
복음: 루카 18,1-8






성모자


부티노네(Butinone) 작, (1490),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대리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그분에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허락은 받지 못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 것 같은 소망으로 잠깐 소개합니다. 그분은 직장에서 명퇴를 하시고 아내 또한 이름 모를 병에 걸려 병원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치매와 같이 자꾸 기억이 사라지는 희귀병입니다. 아내를 돌보느라고 애경사에 참석하지 못하여 세상과 가족들로부터 고립되어 갔습니다. 이런 여러 어려운 사정이 겹치자 형제님은 자살을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자녀가 군 제대를 마치면 힘든 세상을 끝내려고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간간이 대리운전을 하시며 병원비를 마련하였습니다. 병원에 있는 아내에게 만 원짜리를 손에 쥐어주면 그렇게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준 만 원짜리를 모두 베개 밑에 모아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을 마감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을 후회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자신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있다는 것에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사람은 어쨌건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야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기도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대해야 한다는 의미로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를 들어주십니다. 과부는 올바른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재판관을 찾아와 괴롭힙니다. 결국 재판관은 밤낮으로 부르짖는 과부의 청을 들어줍니다.

, 기도의 꾸준함이 곧 믿음의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부는 어떻게 그렇게 밤낮없이 무정한 재판관을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일까요? 바로 자신이 하는 행위에 의미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행위의 의미는 바로 열매이고 결과입니다. 자신의 바람을 재판관이 꼭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했기에 그렇게 꾸준히 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행위에 의미가 있어야 지속합니다. 그렇다면 기도 또한 의미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만 꾸준히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의미는 자신이 하는 기도에 대한 응답에서 옵니다.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는 그 힘을 잃고 금방 지루해지고 힘든 일이 되어버립니다.

 

성인들은 기도는 호흡과 같다’, 혹은 기도는 양식이다라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이 죽은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요즘 예전에 비해 얼마나 기도하는 사람이 적은지 모릅니다. 하루에 단 오 분도 기도하지 않으면서 주일미사에만 나오며 천주교 신자라고 말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호흡을 그렇게 오랫동안 멈추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예전엔 조가-만가를 하는데 한 시간 이상씩 걸렸어도 대부분이 이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오 분도 안 걸리는 아침-저녁 기도를 바치는 것도 어려워합니다. 그렇게 꾸준하게 기도하는 시대가 지나버렸고 그렇게 믿음에 대한 강도도 약해져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기도에서 그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존재가 있다면 누구일까요? 바로 사탄의 무리들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방법을 쓰던지 기도를 방해하려고 합니다. 이는 역으로 생각하면 기도에서 얼마나 큰 유익이 오는지 사탄의 무리들도 잘 알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신학교에서 혼자 밤에 경당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바로 뒤에서 나는 이상한 숨소리가 귀에 들렸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숨을 거칠게 쉬는 사람은 성체조배 실에 있을 리가 만무했습니다. 뒤를 돌아보았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명확하게 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차 지나가는 소리인가 들어보았지만 명확하게 한 남자의 거친 숨소리였습니다. 전에 선배 신학생이 성체조배 실에서 이상한 숨소리를 들어서 다시는 그 방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좀 두려운 생각이 들었지만 마귀의 장난처럼 느껴져서 숨소리를 들으며 정해진 시간까지 성체조배를 마친 다음 혼자 일찍 방으로 내려왔습니다. 침대에 누웠는데도 여전히 숨소리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무서워하거나 반응을 하면 그것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기에 그냥 무시하고 잠을 자버렸습니다. 다음 날부터는 그런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경험에서 기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귀들이 싫어하는 것이 기도라는 것이 저에겐 큰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게 해 준 것은 또 다른 이유에서였습니다. 저는 주님께 무언가를 해 드려야 하는데 주님은 기도 안에서 그저 당신에게 붙어있으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러면 열매는 저절로 맺힐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로 맺히는 열매가 바로 성령의 열매임을 알았습니다.

성령님께서 들어오시면 반드시 열매가 맺히는데 그 열매란 사랑, 기쁨, 평화”(갈라 5,22)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와 같은 열매도 맺혀 인간관계 안에서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그 이상을 해 내게 됩니다. 따라서 성령을 청하는 기도를 하면 그 효과를 느끼지 않을 수 없고 다른 모든 것들까지 더불어 받게 됩니다. 계속 내가 원하는 것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기도를 통해 임하신다는 것을 느끼면 이젠 기도하지 않고서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저절로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바로 기도하면 반드시 성령의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아의 방해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기도를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이 믿음이라고 한다면, 기도에서 우리가 느끼는 응답이 반드시 있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 것을 청하다보면 그 응답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청하기를 기다리시고, 우리가 당연히 청해야 하는 안 가지가 있다면 바로 성령입니다. 루카복음은 쉬지 않고 청해야 하는 대상이 성령님임을 명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루카 11,13)

우리는 주님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야지, 반대로 내 뜻이 주님의 뜻을 꺾고 이루어지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뜻이 나에게 유익하지만 나의 뜻은 나에게 유익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7) 따라서 성령님을 청하는 것이 곧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는 두 명의 강도가 함께 못 박혀 있었습니다. 한 강도는 주님께 구원을 청했고, 한 강도는 청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구원받았고 하나는 받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단 한마디라도 당신께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분은 축복으로 응답하기 위해 노심초사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기도하면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기도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그 의미를 깨닫게 되면 기도하지 않고 사는 일은 불가능해지게 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데, 그 믿음은 지금 기도를 꾸준히 하고 있느냐로 표현됩니다. 우리는 반드시 기도의 의미를 각자가 꼭 찾아서 주님께서 오실 때 만날 수 있는 믿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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