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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0.2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20 조회수1,277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6년 10월 20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제1독서 에페 3,14-21

형제 여러분,

  14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15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종족이 아버지에게서

이름을 받습니다.
16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17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18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19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20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

 21 그분께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세세 대대로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 루카 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어느 형제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우연한 만남에서 첫 눈에

 반해버린 여자였습니다.

밝은 미소와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배려에 이 사람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계속해서 구애를 했습니다.

이 자매 역시 이 남자가

싫지 않았습니다.

성실한 모습과 자신만을

 사랑해 주는 이 남자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

상대방의 모습 중에서

싫은 것은 무엇일까요?

싫은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지요.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 것이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과

연관된 사람 역시 좋게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자매의

 부모님을 뵙고서는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요?
“네 부모님이 좀 이상해.

성격이 특이하셔서 도대체

나하고 맞지가 않네.

나는 당신 부모님을

 이제 보지 않을 거야.”
이 자매에게는

사랑한다면서 이 자매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면

말로 사랑하는 것인지를

의심해봐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와 연관된 것들은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언젠가 그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로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되는

이유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한 집안이 서로

갈라질 것이라고 하시지요.

가까운 친척들의 이름을

지워 버리고 서로

등지라는 말씀일까요?

 주님께서 가족과

 불화할 것을 명하신 것일까요?

우리의 평화이시며 하나 되게

하시는 분께서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주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요한 14,27)

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첫째는 하느님 사랑이고

그 다음이 사람 사랑임을 안다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우리는 사람보다 하느님을

더 공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면 부모를 지으신 분은

얼마나 더 공경해야 하겠습니까?

 부모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자기 부모의 아버님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을 만드신 분을

 몰라본다면 부모님께도

 제대로 된 공경을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이 말씀은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이 완성됩니다.

당신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있거든

 그가 누구이든

그것을 잊어버리고 용서하라.

그때 당신은 용서한다는 것의

행복감을 알게 될 것이다.

(톨스토이)

불을 지르러 오신 예수님, 바로 변화의 불입니다.

위험한 무관심

중국의 한나라가

통일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지략이 뛰어난 차모를 둔 왕이

적국에 쳐들어가려고

첩자를 적국으로 보내서

동정을 살피게 했습니다.
첩자가 돌아와서

“지금이 적을 치기에 적기입니다.

그 나라 백성들의 원성이

보통 높은 것이 아닙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참모는 “아닙니다.

아직 3개월은

기다려보아야 합니다.”

라고 말하며 기다리라고

조언했습니다.
3개월이 지나자

다시 왕은 첩자를 보내

그 나라의 동정을 살폈습니다.

 첩자가 돌아와

“이젠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백성들이 못살겠다고

다른 나라로 떠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참모는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3개월만 더 기다려봅시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다시 3개월이 지나자,

왕은 다시 첩자를

적국으로 보냈습니다.

첩자가 돌아와서

 “이상하게도 그 나라 사람들은

아무 말도 안 하고 멍하니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고 나서야

참모는 왕에게 고하여

군사를 일으키게 했고,

결국 힘 안 들이고 대승을

거둘 수가 있었습니다.
남을 비판하는 것 역시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무관심은 무엇일까요?

사랑의 반대말이라고

말할 정도로 사랑이

완전히 없는 상태가

닐까 싶습니다.

앞선 이야기에 나오는

나라가 망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 사랑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나라의

모든 일에 관심이 없게 된 것이고,

그 결과 다른 나라의 침략을

견디어 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어떤 유혹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마음을

키워나가는데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마귀에게 손쉽게 내 마음을

빼앗기는 어리석은 내가 아니라,

사랑의 마음으로 어떤 마귀도

침범하지 못할

 굳건함을 갖춰야 합니다.

내 안에 가지고 있는 무관심을 없애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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