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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24." 안식일이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24 조회수1,092 추천수0 반대(0) 신고

루카 13,10-17(연중 30주 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려 허리가 굽은 여인을 치유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치유를 간청하거나 믿음을 고백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한 마디 말씀과 안수로 병을 고쳐주셨고, 그 여자는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회당장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신 예수님께 대한 분노를, 안식일에 몰려든 군중들에게 뒤집어씌워 율법위반으로 단죄했습니다. <신명기>(5,12-15)와 <탈출기>(20,8-18)에 따르면, 안식일에 노동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여자가 한 일은 치유를 받았을 뿐, 노동을 한 것은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신 활동도 치유의 말씀과 안수 밖에 없고. 치유자체는 하느님의 권능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회당장은 치유를 하느님의 해방으로 보지 않고 인간적 노동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치유를 하셨지만, 회당장은 그것을 율법위반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의 정신은 <탈출기>(20,8-11)에 따르면, 선행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악행을 멈추고 죄와 질병으로부터 해방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곧 안식일은 장차 있을 휴식의 표상으로, 죄의 짐을 지지 말고 선행을 쌓아 미래의 안식을 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회당장은 하느님께서 안식일을 새우신 뜻은 알지 못하고, 병마에 묶여있던 여인처럼 문자에 묶여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회당장이 ‘안식일에 병을 고쳐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은 예수님을 비난하기 위한 하나의 구실이었을 뿐입니다. 곧 그가 비난하는 진짜 이유는 안식일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찬양받는 것을 보고 질투에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곧 그는 이렇게 속마음을 숨기고 구실을 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를 위선자라고 하시며 질책하십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루카 13,16)

 

 

 

   유대인들이 안식일이더라도 가축을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듯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날인 안식일에 아브라함의 병든 딸을 고쳐주시는 것을 더욱더 당연한 일, 아니 반드시 해야 할 일로 여기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제정하신 안식일의 정신에 온전히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치유를 통하여 안식일의 정신을 실현하시고, 하느님의 구원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생명을 살리는 일, 바로 그 일 말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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