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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0.2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24 조회수1,499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6년 10월 24일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제1독서 에페 4,32─5,8

형제 여러분,

 32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5,1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3 성도들에게 걸맞게,

여러분 사이에서는

 불륜이나 온갖

더러움이나 탐욕은

입에 올리는 일조차

없어야 합니다.

 4 추잡한 말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상스러운

 농담처럼 온당치 못한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감사의

말만 해야 합니다.
5 이것을 꼭 알아 두십시오.

불륜을 저지르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나라에서

받을 몫이 없습니다.
6 여러분은 어느 누구의

허황한 말에도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러한 것 때문에 하느님의

진노가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내립니다.

 7 그러므로 그런 자들과

 상종하지 마십시오.

8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복음 루카 13,10-17

10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11 마침 그곳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펼 수가 없었다.
12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하시고,

13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14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분개하여

군중에게 말하였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15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16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17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그분의 적대자들은

 모두 망신을 당하였다.

그러나 군중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다.

종종 자기계발 책을 둘러봅니다.

물론 필요에 의해서

 구입하는 책도 있지만,

 사실은 책 제목이 재미있어서

둘러 볼 때가 있습니다.

자기계발 책들은 제목 자체가

참으로 자극적입니다.

이 책만 보면 정말로 만능이

될 것 같고 불가능한 일이

없을 것만 같습니다.

책을 읽은 단 며칠 만에

성격이 완전히 바뀌어서

공동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되고, 취업이 안 되어

고생하고 있어도

이 책만 있으면

대기업에도 거뜬하게

들어갈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돈을 그냥

내 주머니로 다 쓸어

모을 수 있다는

유혹을 하는 책도 있습니다.
책 제목처럼 정말로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로또 복권을

입하면서 1등을

 꿈꾸는 것보다도

 더 황당무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의 내용을 완전히 달달

외운다고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책의 제목처럼 실제에서

 이루질 수 있으려면 책에서

제시하는 내용을 몸으로

실천해야지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것입니다.
변화라는 것은

이론적인 것이 아닙니다.

변화는 지극히

실천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드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하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실제로는 하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신앙생활을 위한 다짐들,

건강을 위한 많은 생각들,

지금의 삶을 더욱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생각 등을 볼 때,

지금까지 수십 번 변화를

이루고도 남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별 성과를 이루지

못할 때가 더 많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사랑의

삶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하게 원하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머릿속으로만

막연한 변화만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만

‘이렇게 하면 변화될 거야.’

 정도에만 머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회당장은

열여덟 해 동안 병마에 시달린

여인을 고쳐주신 예수님이

또 다른 사람을 고쳐줄까봐

군중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안식일법에 의거해서

타당한 말처럼 들립니다.

 이론적으로는 맞지요.

그러나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하는

이 여인의 아픔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안식일은 이 회당장의

 생각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아닙니다.

 6일의 창조를 마친 하느님께서

쉬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하루를

쉼 안에서 하느님의 거룩함에

동참하는 날인 것입니다.

사실 당시 근동지역에서도

 노동자들이 쉬는 날이

있기는 했습니다.

즉, 보름 일하고 하루를

쉬는 구조였지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획기적으로

 6일 일하고 하루를

쉬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안식일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바로 인간을 위한

선물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사랑을 베푼 것처럼, 우

리 역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날인 것입니다.
복음에 등장한 회당장처럼

이론적으로만 주님의 말씀을

 머릿속에 담고 따라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말씀이 실천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살아갈 때,

주님의 거룩함에 동참하는

진정한 변화가 내 안에서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변할 수 없는 것은

조용히 받아들이는 힘,

변해야만 하는 것은

변화시키는 용기,

그리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십시오.

(R.니부어)

어제 특강 다녀온 인천의 갈산동 성당입니다.

미디어의 공격

현재 한국인이 하루에

평균적으로 접하는 미디어의

종류와 시간을 적은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신문 읽기 30분,

책 읽기 23분,

라디오 청취 1시간 1분,

태블릿PC 사용 1시간 28분,

노트북 사용 1시간 50분,

스마트폰 사용 1시간 57분,

 TV 시청은

3시간 9분이라고 합니다.

이를 전부 더하면 자그마치

10시간 18분이나 됩니다.

 이는 곧 매일 엄청난 미디어

메시지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하루가 100시간이면

10시간 정도야 10분의 1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하루

 24시간이라는 점을 기억할 때,

10시간은 엄청난 양의

시간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양의 미디어

 메시지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스스로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남의 생각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소위 ‘카더라(~하더라)

통신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다보니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현명함도 사라집니다.

그저 자극적인 메시자가 동물적인

 반응만 촉발할 뿐입니다.

깊은 묵상을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올바른 판단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제 미디어 메시지를 보는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게 되면 어떨까요?

분명히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미디어의 공격에 무방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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