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0.2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26 조회수1,422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6년 10월 26일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제1독서 에페 6,1-9

1 자녀 여러분,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옳은 일입니다.

 2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이는 약속이 딸린

첫 계명입니다.

3 “네가 잘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

4 그리고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5 종 여러분,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두려워하고

 떨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현세의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6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좋아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진심으로

실행하십시오.

7 사람이 아니라 주

님을 섬기는 것처럼

기쁘게 섬기십시오.
8 종이든 자유인이든

저마다 좋은 일을 하면

주님께 상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9 그리고 주인 여러분,

여러분도 종들을 이와 같이

대해 주십시오.

겁주는 일은 그만두십시오.

그들의 주님이시며 여러분의

주님이신 분께서 하늘에 계시고

 또 그분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복음 루카 13,22-30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30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아침에
제가 키우는 강아지들과
함께 산책을 하던 중에
갑자기 발바닥에 큰 고통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아픈 다리를 들고 서서
신발을 벗으려고 했지만,
신발 밑창에 박힌
무엇으로 인해
신발을 벗기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땅바닥에 앉아서
 신발 끈을 푼 뒤에야
겨우 신을 벗을 수가 있었고,
신발 밑창에 박힌 큰 못 하나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망치로 못을
박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신발 밑창에
못이 박힌 것일까요?
제 몸무게가 망치
역할이 된 것입니다.
무거운 제 몸에 의해 눌려서
못이 신발 밑창에
 쑥 박힌 것입니다.
못에 의해 상처가 난
발 바닥을 확인하고 있는데,
그 순간 제가 방금 뽑은
 못 위를 지나가는 벌레
한 마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벌레도 뾰족한
무엇에 상처가 날까?’
누군가 뾰족한 무엇인가로
누르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가볍기 때문에
다치지 않는 것입니다.
가볍기 때문에 다치지 않는
벌레를 생각하면서
우리 마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 마음의 무게가
무거워서 더 많이 다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벌레와 같은 가벼움을
내 마음이 가지고 있다면
어떤 뾰족하고 날카로움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도
다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내 마음의 무게를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욕심과 이기심으로
더해지는 무게,
 온갖 걱정과 두려움으로
 더해지는 무게,
남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과
미움으로 생기는 무게 등으로
 우리 마음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졌습니다.
그래서 자그마한 문제에도
 쉽게 찔리고 상처가 나서
아픔과 고통을 느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는
가벼운 마음이라면 어떨까요?
도저히 견디기 힘든 아픔과
상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기쁘게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이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당시의
믿음에 기초해서 하느님과 가까운
자기들은 구원받고, 다른 많은
 이방인들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만이
구원받는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가까이에
있다고 해서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앉는다는 보장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행해야지만
가능하다는 뜻으로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당을 열심히 다녔다고 해서,
또한 주님의 이름으로 봉사와
희생을 많이 했다고 해서
구원될까요?
물론 구원의 길에 훨씬
더 쉽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의 무게가
이 세상 것들로 무겁다면 구원의
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의 무게들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욕심, 이기심, 부정적 판단과 미움,
불신으로 인한 걱정과 두려움 등의
 무게들을 가볍게 할 때,
원의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행동이 삶이 힘을 주고,
절제가 삶에 매력을 준다.
(장 폴 리히터)
이스라엘 예수님 탄생성당으로 들어가는 문.
너무 낮고 좁아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합니다.
커피를 쏟을 때

 (‘좋은 생각’ 중에서)

한 정신과 전문의가

 고민에 빠졌다.

 환자들이 마음 속

고민을 쉽사리

 털어놓지 않아

치료가 어려운 것이다.

그는 환자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실력이 좋은

의사인지 알렸다.

병원에 졸업장,

상패 등을 놓고

화려한 경력을 드러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고민 끝에

나이 지긋한 교수를 찾아갔다.

많은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로 유명한 이였다.

그는 긴장했다.

 ‘미숙하다고 화내면 어쩌지?’

하지만 걱정과 달리 교수는

 그를 따뜻이 맞이했다.

 어렵게 입을 떼려는 순간,

교수가 실수로 커피를 쏟았다.
“어이쿠, 미안하네.

아내가 있었다면 꾸지람을

들었을 텐데 다행이군. 하하.”
교수가 웃자 그의 마음도 함께

가벼워져 고민을 편히 얘기했다.

교수가 말했다.
“멋진 학위만으론

 마음을 열 수 없어.

 환자들은 누구에게도

터놓기 어려운

약점을 들고 온다네.

방금 내 실수를 보고 자네도

미소 짓지 않았나?

자네의 빈틈을 보여 주면

상대의 마음 문도 쉽게 열린다네.”
나의 빈틈을 숨기기에

급급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그 빈틈이 다른 이와의

통할 수 있는 길

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빈틈을 숨기는 위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를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가벼운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가을을 느끼게 해주는 가로수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