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29 조회수1,509 추천수9 반대(0)

지난 월요일에는 대관령엘 갈 일이 있었습니다. 3시간 운전이 부담이 되었는데 동창 신부님이 같이 갈 수 있는지 전화를 하였습니다. 저는 동창 신부님이 있는 성당으로 갔고, 둘이서 대관령까지 갔습니다. 고맙게도 동창 신부님이 운전을 해 주었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원주엘 가야 했는데 비가 와서 행사가 취소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동창 신부님과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내려올 때는 동창 신부님의 전화가, 올라 갈 때는 비가 저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불가에서는 인연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바보 온달은 평강 공주를 만나서 장군이 될 수 있었고,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큰 공을 세웠습니다. 평강 공주는 온달의 가능성을 알았고, 온달은 평강 공주를 믿었습니다. 저는 천주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고, 좋으신 본당 신부님을 만나서 사제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이 또한 태초부터 맺어주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매일 아침 저의 묵상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도 제게는 커다란 인연입니다. 저의 삶과 저의 생각을 함께 나누는 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동양에서는 좋은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어질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공평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해야 한다고 합니다. 연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배움이 많았고, 열정도 있었고, 종교적인 확신도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고, 율법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배도 버리고, 그물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처럼 바오로 사도는 배움도, 열정도, 종교적인 확신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내 생의 전부입니다. 나는 살아도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습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삶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이러한 삶이 가능한 것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쉽고 편한 길이 있지만 굳이 좁고 힘든 길을 가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께서도 그런 길을 가셨습니다. 사람들이 왕으로 추대하려 할 때 오히려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하였습니다. 죽음이 기다리는 곳, 십자가와 가시관을 가지고 올가미를 씌우려는 이들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토록 험난한 길,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을 가셨을까요?

산악인들이 목숨을 걸고 개척한 길은 등산로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서 험한 산을 안전하게 오를 수 있습니다. 인생은 어쩌면 아무도 가지 않은, 아무도 오르지 않았던 산을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인생의 길에 먼저 가신 이들의 발자국은 위로와 희망이 됩니다.

 

부족한 저를 위해서 사랑을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함께 일하는 성소국 가족들이 있습니다. 늘 기도로 응원을 해 주시는 복음화 학교 공동체가 있습니다. 엠이, 꾸르실료로 맺어진 인연도 있습니다. 교구청에서 함께 지내는 신부님들, 주교님들, 교구장님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인연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저 역시도 제가 만나는 이웃들에게 좋은 인연으로 다가가고 싶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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