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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라질 것과 되돌아 올 것들에서 /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31 조회수1,257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요즘은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내는 부조(扶助)가 상대방에 대한 진심 어린 축하나 위로가 아닌 그야말로 경제적인 품앗이로 전락한 듯싶다. 마음의 표현까지 자본화되어 측량이 가능해지고 같은 대가를 상대방에게 언젠가는 지불해야 하는 채무처럼 여긴다. 비혼(非婚)이 늘어나면서 아예 혼인 포기를 선언하고, 그동안 전해 준 축의금을 돌려 달라고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부자들만이 교회의 현실이 되고 가난한 이들은 생각에만 머물러 있을 때, 교회의 세속주의는 더욱 깊어진다.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줄 때, 비로소 복음의 의미도 교회의 존재 이유도 제대로 깨달을 수 있으리라. 우리가 가난한 이를 가까이할 때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어느 신학자는 교회가 이미 신자본주의 물질적 우상으로 자리 잡았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 14,12-14)’

 

우리는 자신을 좋아하는 이나 나은 이를 식사에 초대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에게 반대로 말씀하신다. 잔치에 사람을 초대하여 식사를 베풀 때에는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라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은 현세에서는 호의나 은혜를 갚을 수 없는 이들이다. 예수님은 그들이 현세에서 보답할 수 없기에 하느님께서 대신 세상 종말 때에 의인들에게 갚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시는 거다.

 

사회가 양극화될수록 쌓여 가는 불만에 극단적인 사건 사고가 늘기에 가난한 이들과 약자들에 대한 손길은 더 필요하다. 요즈음 기부가 좀 늘었다지만, 여전히 인색하다. ‘조건 없는 사랑이라지만, 조건 없이 사랑하고 희생하는 일은 드물다. 누군가를 도울 때 같은 물질적인 대가를 바라는 선행은 일종의 거래이다. 언젠가는 그가 나를 도울 것이란 전제가 숨어 있기에.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식사에 초대한 바리사이에게, 이런 거래 형태의 선행은 하느님의 자비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물질이 부족한 것만이 가난은 아니다. 건강하지 않은 것, 삶의 환경이 열악한 것, 몸과 마음의 장애, 이 모두가 가난이다. 마음의 가난, 감정의 빈곤, 지식의 부족도 가난일 게다. 충만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부족한 탓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더 많은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리라. 그들은 쉽게 상처받고, 쉽게 마음 아파할 게다.

 

사실 그런 이들을 무시하지 않는 게 돕는 행위이다. 그런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초대하는 행위이다. 조금 낫다고, 조금 높은 위치에 있다고 쉽게 무시하려 들지만 그래서는 결코 안 된다. 무시하면 당하는 이는 금방 느끼게 되어 있을 테니까. 어떤 경우에도 자존심을 상하게 해선 안 된다. 그게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사는 지혜이다. 그들이 보답하지 않아도 주님께서 보답하신단다. 주님께서 우리의 내면세계를 풍요롭게 하시기에 가만있어도 행복할 것이다. 은총이 우리와 함께할 것이기에.

 

교회는 친한 사람들이 끼리끼리 어울리거나 부유하고 학식과 지위를 가진 이들이 특별히 대접받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가난한 이들이 초대받고, 아픔과 무거운 짐을 진 이들이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는 삶의 자리여야 한다. 우리가 이를 실천하는 데 얼마나 주저하고 굼뜨며, 오히려 변명거리를 찾기에 급급한지! 이에 가끔은 부끄러움과 부담감이 앞선다.


그리스도 신앙은 하느님의 무조건적 사랑에 철저히 뿌리박는다. 하느님은 측량할 수 없고 무한한 신비 그 자체이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웃과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보이며,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다. 자기 것만 돌보지 않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는 일은, 하느님께 내가 받은 은총을 되돌려 드리는 일이어야 한다. 내 능력을 과시하거나 훗날 보답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면, 우리가 예수님의 참 제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가난하고, 다리 절고 눈먼 이를 먼저 초대하라.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게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베푼 건 결코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훗날 언젠가는 다시 받을 것을 것임을 분명히 기억하자. 지상의 것은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만, 지상서 나눈 건 죽음과 함께 반드시 되돌아옴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http://blog.daum.net/big-llight 

태그 초대,가난,작은 이,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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