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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왜 이리 심각하냐? (Why are you so serious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01 조회수2,071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6년 다해 위령의 날


<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


독서: 욥기 19,1.23-27ㄴ






십자가를 경배함


엘 그레코 작, (1585-1590), 캔버스유화, 250 x 180, 파리 루브르 박물관


  

오랜만에 같은 본당 출신 신부들과 저녁자리를 가졌습니다. 저녁을 먹고 간 곳은 스크린 야구장이었습니다. 스크린 골프장은 들어봤어도 스크린 야구장은 처음 가 봅니다. 앞 화면에서 투수가 공을 던지는 동작을 하면 작은 구멍에서 진짜 공이 튀어나옵니다. 그것을 받아치면 스크린에 공이 표시되어 안타인지 아웃인지 볼 수 있게 됩니다. 지금은 한국시리즈 야구가 한창입니다. 그 곳에선 작은 실수 하나가 일 년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스크린 야구장에서는 동료들에게 농담 섞인 꾸지람 한 번 들으면 끝입니다. 게임이 너무 재미있어서 우리는 한 번 더 연장하며 두 시간 가량을 즐겁게 놀았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시리즈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과연 야구를 즐기고 있는가?’가 궁금해졌습니다. 언젠가 축구선수 이동국이 자신은 축구를 즐겨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심각하면 즐길 수 없습니다. 그게 전부라 느끼면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인터넷 댓글은 예측하기 매우 쉽습니다. 잘못한 사람에 대한 글이 올라오면 댓글은 모두 죽여야 한다느니,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사냐느니 하는 말들이 주류를 이룹니다. 선행을 한 사람에 대한 글이 올라오면 천사라느니 앞으로 잘 되기를 바란다는 칭찬 일색입니다. 여기에서 반대 의견을 올리는 사람이 있으면 질타의 대상이 되어 덧글이 달리며 뭇매를 엄청 맞게 됩니다. 예를 들면 김연아 선수가 오십억이 넘는 액수를 기부했다는 글에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은 부동산도 많이 샀다는 글을 올렸다가 거의 매장되다시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젠 자신의 의견이 세상 일반 사람들의 의견과 조금만 다르더라도 입을 막아야하는 매우 심각한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외치면서도 실제로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말들은 눌러버려야 속 시원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한 사람들은 죽어야하고 잘한 사람들은 건들지 말아야 한다고만 말해야 되게 돼 버렸습니다.

 

배트맨 영화에 보면 조커라는 악당이 나옵니다. 입 꼬리가 항상 위로 올라가있는 광대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항상 심각했기 때문에 그 아버지가 넌 왜 이렇게 심각하기만 한 거냐? (Why are you so serious?)”라고 하며 그의 입을 그렇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정작 심각한 인물은 세상을 지켜야하는 배트맨입니다. 그는 착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조커에 비해 재미는 없는 인물입니다. 항상 심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심각해야만 지구를 지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듯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모든 것들이 너무 현세에만 사람을 집착하게 만드는 역효과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본 게임이 아니라 연습입니다. 이 세상은 전부가 아니라 거쳐 가야 할 통로입니다. 이 세상은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이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인생의 낙오자나 되는 것처럼 심각해합니다. 그냥 스크린 야구장에서 연습한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요? 그렇다고 인생을 막 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본 게임을 앞에 두고 연습을 게을리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실패해도, 성공해도, 크게 절망하지 않고 크게 기뻐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승부는 나중에 오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연습입니다. 이것을 알려주는 날오 오늘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공한 사람도, 실패한 사람도 다 죽습니다. 위령의 날이라고 해서 그들을 위로할 필요는 없습니다. 각자가 이 세상에서 연습한 대로 심판을 받겠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에서는 누구도 위로할 수 없습니다. 바뀌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작 그 심판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은 우리 자신들이고 그 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욥은 자녀들을 다 잃고 모든 재산을 다 잃고 자신의 건강까지도 잃고 나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욥은 이 세상에서 귀중하다고 하는 것을 다 빼앗겼어도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끝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연습인 이 세상에서 물론 최선은 다할지라도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절망하거나 이세상이 끝인 것처럼 살아가지 맙시다. 착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땅에 묻혀 썩어버릴 인생입니다. 그분들이 계신 그 저 먼 곳에서 그분들이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고 계신지 생각해봅시다. 이 세상은 주님의 나라에서 죄짓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연습하는 곳이고 자신을 시험하는 곳입니다. 저 세상에 계신 분들을 바라보며 이 세상은 과정임을 되새겨봅시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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