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1.2."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02 조회수1,296 추천수0 반대(0) 신고

마태 11,25-30(위령의 날)

 

    

 

   11월은 정녕 신비의 달입니다. 절로 죽음과 비움의 신비를 묵상하게 합니다.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우리를 존재의 심연으로 이끌고 갑니다.

 

   마른 풀 한 줄기를 침대로 삼아 내려앉은 서리에서도, 뒹구는 낙엽을 깨우며 소스라치게 부는 바람에서도, 우리는 그 죽음과 만남의 신비를 봅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이미 우리 안에 있는 죽음을 보는 것이요, 이미 우리 안에 계시는 그분과의 만남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은 하나의 통로요, 만남입니다.우리가 희망하다가, 마침내 그 희망한 분과 만나는,바로 그 일입니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묵상하는 것은 죽은 다음에 오는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생사가 갈라질 수 없게 펼쳐져 있는 삶의 세계를 성찰하기 위해서입니다.곧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이요, 현재를 충실히 죽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죽음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지으며, 삶의 질이 죽음의 질을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곧 웰 빙(well being)과 웰 다윙(well dying)은 같은 것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완성을 향한 삶이요, 죽음인 까닭입니다.

 

   그래서 파우스티나 성녀는 말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첫 순간이고 마지막 순간이며 유일한 순간이다”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죽음은 단순히 모든 것이 끝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간다는 고귀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죽음이 인생의 한 과정의 마감일 뿐, 결코 허무한 끝이 아니라는 믿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듣기만 하여도 벅찬 감격이 밀려오는 말씀입니다.당신께서 안식을 주겠다는 이 벅찬 초대에서 우리는 참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곧 “참된 안식”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선사되고 베풀어지는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음 구절에서도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9)

 

 

 

   “얻을 것이다”의 원어의 뜻은 “찾다”, “발견하다”는 뜻이라 합니다. 곧 참된 “안식”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찾고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예수님 안에서 찾고 발견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참된 스승이신 예수님 안에서만이 참된 “안식”을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오로지 예수님만이 참된 “안식”을 가지고 계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요한 14,6) 까닭입니다.

 

    그러기에, “참된 안식”, 그것은 그것을 가지신 분으로부터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로로써 얻어진다기보다는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이요, 탐구함으로써 얻어진다기보다는 순명으로 얻어지는 것이요, 알음으로써 얻어진다기보다는 사랑함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것은 그분의 선물이요, 사랑이요, 자비요, 호의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안식은 참된 주인에게서 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주님을 찬미하며, 이미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기리며, 주님의 축복과 은총에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오늘 우리는 가족과 공동체 식구들뿐만 아니라, 특히 소외된 영혼들, 곧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들과 잊혀 진 이들을 위해서 기도를 바쳐야 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영혼들과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과 무죄한 사람들의 죽음을 함께 아파하며,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의 살육 속에서 희생된 이들, 테러와 폭력의 희생자들, 고문과 억압으로 희생된 이들 등 이루 헤아릴 수없는 타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제도적 폭력의 물대포를 맞고 317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지난 10월 25일 세상을 떠나, 아직도 한 달이 넘어도 장례식을 치루지 못하고 있는 백종기 엠마누엘 형제님의 영혼을 위해서도 기억해야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