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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1.0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06 조회수1,400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6년 11월 6일

연중 제32주일

제1독서 2마카 7,1-2.9-14

그 무렵

1 어떤 일곱 형제가

 어머니와 함께 체포되어,

채찍과 가죽끈으로

고초를 당하며,

 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강요를 임금에게서

받은 일이 있었다.
2 그들 가운데 하나가

대변자가 되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를 심문하여

무엇을 알아내려 하시오?

우리는 조상들의

법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을

각오가 되어 있소.”
둘째는

9 마지막 숨을

거두며 말하였다.

“이 사악한 인간,

당신은 우리를

승에서 몰아내지만,

 온 세상의 임금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위하여,

죽은 우리를 일으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리게 하실 것이오.”
10 그 다음에는

셋째가 조롱을 당하였다.

그는 혀를

 내밀라는 말을 듣자

 바로 혀를 내밀고 손까지

 용감하게 내뻗으며,

11 고결하게 말하였다.

“이 지체들을 하늘에서

받았지만, 그분의 법을

위해서라면 나는

이것들까지도

하찮게 여기오.

그러나 그분에게서

다시 받으리라고 희망하오.”

 12 그러자 임금은 물론

그와 함께 있던 자들까지

고통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그 젊은이의 기개에 놀랐다.
13 셋째가 죽은 다음에

들은 넷째도 같은 식으로

괴롭히며 고문하였다.

 14 그는 죽는 순간이 되자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더 낫소.

그러나 당신은 부활하여

 생명을 누릴 가망이 없소.”

제2독서 2테살 2,16─3,5

형제 여러분,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3,1 끝으로 형제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처럼

 빠르게 퍼져 나가

찬양을 받고,

2 우리가 고약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구출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은 성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고

 여러분을 악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4 우리는 주님 안에서

여러분을 신뢰합니다.

우리가 지시하는 것들을

여러분이 실행하고 있고

 앞으로도

실행하리라고 믿습니다.

 5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이끄시어,

하느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이르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복음 루카 20,27-38

그때에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건강을 위해서

우유를 주문해서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보다

더 건강해진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누구일까요?

이 사람의 가족이나 친구일까요?

아니면 이 사람의 우유를 몰래

훔쳐 먹었던 그 누구일까요?

아니었습니다. 글쎄 이 사람에게

우유를 배달해 준 배달원이

더 건강해졌다고 합니다.
배달하는 노력, 즉 땀을

흘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학생 때

 영성면담 해주시던

 신부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 신부님께서는

 제가 가지고 있었던

고민들을 들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너 요즘에 운동을 하지 않는구나.”
뜬금없이 하신 이 말씀에

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고민과 운동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신부님께서는 운동을 통해

땀을 흘리지 않으니 쓸데없는

잡념이 많고 스트레스도

 쌓이는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온 힘을 다해 집중해야 하는데,

그래서 쓸데없는 잡념을 없앨 수 있는

운동을 하라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많은 잡념으로 인해서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기도와 묵상, 희생과 봉사 등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잡념들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주님 곁으로

나아가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주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사랑’에 집중하면 되는데,

그 사랑보다는 세상의 것들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또한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해서 ‘사랑’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은 아니었을까요?

이런 측면에서 오늘의

복음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은 일반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사두가이들의 주장을

다 부정하시는 것입니다.

 일반 유대인들은 죽은 이들이

부활한다고 믿기는 했지만

부활 이후의 인간 상태에 대해

매우 조잡하고 육적인

관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즉, 이 세상 사람들이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가는 모습이

부활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고

생각하면서, 현세와 내세를 똑같은

 세상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던

 사두가이들은 죽은 형제의 아내를

맞아들여 후사를 이어주는 일곱 형제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부활 후에

누구의 아내도 될 수 없기 때문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그렇다면 천사들과 같아지는

사람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하느님께서 자격이 있다고

인정하시는 이들, 믿음으로

하늘 나라를 받아들이고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사랑을 실천하면서 철저하게

 따르는 이들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천사들과

같아져서 부활에 동참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실 죽음 이후의 삶은

우리가 판단하고 결정할

시간이 아닙니다.

오로지 주님의 자비에 달려

 있는 시간이지요.

이렇게 간단히 생각하면

쓸데없는 생각과 판단으로

혼란에 있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저 천사들과 같아지는

사람의 모습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기만 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천사들과

 같아지는 사람의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그래서 주님께

그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누구나 수백 가지

 이유를 버리고 단 한 가지

이유로 서로 사랑한다.

(신용옥)

예수님 부활성당에서의 미사.

행복으로 나아가는 생활 원칙

행복지수가 높은 북유럽 국가가

 공통적으로 따르는 생활 원칙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얀테법칙

(Janteloven)

과 라곰(Lagom)입니다.
얀테법칙의 제1원칙은

 ‘당신은 특별하지 않다’로

다시 말해

 ‘세상에 특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보다

 뛰어난 학벌이나

좋은 직장 등의

구분이 없다고 합니다.

한편 ‘라곰’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적당함을 의미합니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돈을 벌어서

적당히 행복한 것을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일상 안에서 이런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별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으로

서로를 인정하며

살 수 있다면 어떨까요?

또한 모든 부분에 있어

적당함을 유지하면서

살아간다면 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특별 대접을 받으려는 마음을

가졌던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예수님께서 꾸짖으셨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깨닫습니다.

그들 역시 주님께서는

사랑하셨던 것이지요.

단지 행복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까워서

그렇게 혼을 내셨던 것입니다.
지금의 내 모습을

주님께서 보신다면 어떻게

하실 것 같습니까?

이 가을에 행복하세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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