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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 안에 생명이 있음을 아는 법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06 조회수1,508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6년 다해 연중 제32주일


<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다 >


복음: 루카 20,27-38






십자가를 경배함


엘 그레코 작, (1585-1590), 캔버스유화, 250 x 180, 파리 루브르 박물관


  

 

어제 한 수녀원에 갔었는데 두 수녀님들이 작은 어항에 붙어서 분주하게 무언가 하고 있었습니다. 궁금해서 들어가 보았더니 작은 채로 보일랑 말랑 하는 새끼 물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방금 부화했는데 빨리 건져내지 않으면 큰 것들이 먹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것이 여간 빠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워낙 작아서 돌 틈 새로 들어가면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겨우겨우 건져내어 새끼들만 키우는 작은 어항으로 옮겼습니다.

그 수녀님들이 참으로 예뻐 보였습니다. 새끼가 부화하기를 얼마나 기다렸겠으며 보자마자 끈기 있게 살려내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사라져도 있었는지도 모를 그런 작은 생명체 하나를 위해서 애쓰는 모습에 주님은 우리 한 영혼을 위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계실까 저절로 묵상이 되었습니다. 농담으로지만 잘 안 잡히는데, 그냥 죽으라고 내버려두죠.”라고 말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두가이들은 부활이 없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현세에 치중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있다면 참고 기다리고 희생도 해야겠지만 차라리 앞뒤 안 가리고 즐기자는 심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은 살아계신 자들의 하느님이라고 하시면서 아브라함도 이사악도 야곱도 살아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끝맺으십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주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라는 말 안에, ‘그러니까 주님도 살아계신 것이다라는 의미가 숨어있는 것처럼 들릴까요? 살아있는 분은 모두가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믿는 이들은 영원한 생명이 그 안에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생명으로 대하지 않고 자기가 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게 됩니다.

 

며칠 전 세상이 이런일이에서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어 얼굴의 형태가 무너져버린 33세의 심현희씨의 사연이 방영되었습니다.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는 모습을 하고도 그 가족 서로간의 사랑이 묻어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연이 나간 후 4일 만에 심현희씨 수술비로 56000여명이 자발적으로 후원하여 10억 원이 모인 것입니다. 아직 우리나라에도 그렇게 불쌍한 사람들이 마치 나의 가족처럼 살아있는사람으로 보이는 이들이 많은 것입니다. 만약 사두가이들이었다면 그런 불쌍한 사람에게 대해 동정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세에서 자기가 우선 잘 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겐 자신만 살아있고 나머지는 죽은 사람들입니다. 자신 외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실제로는 그들이 죽은 인간들입니다. 자신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터널이란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터널이 무너지며 밑에 갇힙니다. 많은 비용과 희생을 치러가며 한 사람을 살리려하지만 더 이상 연락도 되지 않아 생사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다 포기하려합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포기할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주인공의 아내입니다. 아내에게 그 남편은 죽었다는 것이 완전히 확인되기 진까지는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포기해도 가족만은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이 그 터널 밑에서 살아있다고 혼자서 굳이 믿으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생명 자체이십니다. 사랑이 곧 생명입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이 생명도 지닌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이 우리 모두가 당신에게 살아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말은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실 수 있는 사랑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를 보아주시는 그 분은 살아계신 분인 것입니다.

 

반면 내가 다른 사람들을 죽은 사람들 취급한다면 사실 그들이 죽은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을 죽여 가면서까지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합니다. 그들을 위해 작은 희생쯤은 누군가가 감수해 주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만 살아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 자신들 안에 생명이 없으니 타인의 생명이 귀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도 하나고 생명도 하나입니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그 안에 생명을 품은 사람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어야 타인이 지닌 그 가치도 아는 법인 것입니다.

 

영화에서 뱀파이어나 좀비는 타인의 피를 먹고 삽니다. 그에게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양식입니다. 살아있는 것은 먹을 수 없습니다. 그들에겐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음식인 것입니다. 자신들을 위해 죽어주어야 하는 희생양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람들을 이용하여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현세주의자들도 이 뱀파이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죽은 좀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뱀파이어는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자신이 죽은 사람이기에 타인을 위해 흘릴 피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우리들은 모두가 살아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 우리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당신 아드님까지도 희생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타인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그래서 생명을 간직한 사람인 것입니다.

 

수녀님들이 피라미 한 마리를 구하려고 그렇게 애쓰는 이유는 그분들에겐 피라미는 살아있는 생명체이고 살아있다고 느끼니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주는 노력을 할 수 있었던 것이고 자신의 생명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안에 생명을 간직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철환 작가의 이야기 중 눈만 오면 육교를 쓰는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매일 아침 출퇴근 시간에 아무도 관심 없는 육교를 빗자루로 씁니다. 그 눈이 얼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나가던 한 사람이 무슨 사연으로 추운데 매번 나오셔서 눈을 쓰시느냐고 물어봅니다. 그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이 눈 오는 날 이 육교에서 넘어져 식물인간이 되어 지금은 집에 삼년 째 누워 있다오. 다시는 이곳에서 이런 불상사가 나지 않도록 눈을 치우고 있는 것이라오. 그리고 이렇게 하면 혹시 하늘이 감동하여 내 아들의 건강도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있다오.”

그 할아버지에겐 모든 인간이 살아있는 인간입니다. 그래서 그 생명을 유지시켜 주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쏟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생명을 쏟고 있다는 말은 그 안에 생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할아버지에게 모든 사람이 살아있게 보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 할아버지가 살아계신 것입니다. 우리에겐 모든 사람이 살아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구원에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을 위해 나의 생명도 쏟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도 여원한 생명이 활동하고 계신 것입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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