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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쁨의 삶은 겸손한 이만이 /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08 조회수2,020 추천수4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소나 개처럼 짐승이 말을 잘 들으면 순하다.’고 말하지 겸손하다.’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겸손은 사람에게만 쓰이는 말이다. 겸손한 이는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며 한계와 약점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모든 재능이나 능력이 하느님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겸손한 이는 자신은 물론이고, 이 세상의 주인은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며 하느님께 늘 의지하면서 살아갈 게다.


너희가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시중을 들어라. 그 다음에 먹어라.’ 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 받은 대로 하였다고 주인이 고마워하겠느냐? 이처럼 너희도 분부 받은 대로 하고는,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7,7-10 참조).”

 

행복은 주님만이 주시는 거다. 미래 역시 그분께서 주관하시리라. 그러기에 저희는 주님의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늘 묵상하며 살아야 한다. 매일매일 말씀의 실천을 훈련해야만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감사하며 나누어야 한다. 그러면 겸손해질 게다. 나누는 이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보답이 온다. 사실을 체험한 이에게는 인생이 늘 신비스럽다.

 

좋은 이와 함께 일하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일하는 것은 더 큰 행복일 게다.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내가 모시는 윗분을 존경하며,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를 사랑한다면, 아무리 힘든 일 하더라도 그것은 내 자신을 성취시키는 행복이리라.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종의 모습은 참으로 가혹해 보인다. 들에서 고생한 종에게 다시 밥상을 차리게 하는 종은 참 비참하다. 그러나 이 행동들이 강요가 아닌 자신의 겸손에서 나오고, 하느님을 향한 그지없는 사랑에서 나오는 행동들이라면, 그 종은 정말 더없이 행복한 종이다. 사랑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니까.

 

하느님께서 각 개인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다. 몫에 따라 할 일을 다 했다면 내세울 것이 아니라 그저 쓸모없는 종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리라.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일들이 있을 게다. 그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 하느님도 다른 누구도 그 일에 대해 나에게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다른 이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언짢아할 일은 더욱 아니다. 종이 모든 것을 주인의 자비와 선처에 맡기듯이, 우리도 최선을 다한 다음 하느님의 자애에 맡겨 드려야 하겠다.

 

그래도 믿는 우리는 겸손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는 있다. 자신을 낮추는 행위라고 잘 안다. 그러나 얼마만큼 낮추어야 하는지, 왜 낮추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게다. 겸손한 이는 다른 이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남들이 그와 만나기를 좋아하고 쉽게 모인다. 자신을 낮추는 이가 큰일을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자신을 낮추다보면 자칫 비굴함이나 천박함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기에 오늘을 사는 우리는 먼저 그 잘난 자존심을 꼭 버려야 한다. 그럴 때만이 비로소 자신이 겸손한 이로 바뀔 게다. 낮추었기에 더 많은 걸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느님은 그저 생명을 주시면서 어두움을 멀리하고 밝은 자신감으로 매사를 살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기쁜 마음으로 정말 겸손한 삶을 살아가야만 하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http://blog.daum.net/big-llight 

태그 겸손,종,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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