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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리석고 고약한 질문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10 조회수1,505 추천수5 반대(0) 신고



 

 

어리석고 고약한 질문

 

- 윤경재 요셉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루카 17,20~21)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의 자자한 명성을 듣고 의구심과 호기심이란 상반된 의문이 들었습니다. 네까짓 게 무얼 알겠느냐하는 의구심과 그래도 궁금하던 문제를 어떻게 대답할는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질문하였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가 그 당시 유다인들에게는 절실한 화두인 셈이었습니다. 계속된 이민족의 지배로 무너질 대로 무너진 민족의 자존심과 선진 문물로 교묘하게 문화적 침범을 감행하는 로마제국의 강압에서 벗어나게 해줄 계기를 열망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숫한 예언자 무리가 자칭 타칭 예언자 또는 메시아라고 하면서 등장하였던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도 그들 중에 하나일 거라 지레짐작하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시험 삼아 해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마르 12,13~14)

 

두 질문 모두 아주 고약한 위선이 내포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교에 제자들을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한 수행 과정 중에 공안이라는 질문을 던져, 제자가 화두를 붙잡고 참구하여 진리에 도달하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중에 은산철벽이라는 공안이 있습니다. 은으로 만들어 어디 하나 붙잡을 데 없이 미끄러운 높은 산을 올라가고, 강한 철로 되어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는 벽을 만나 그것을 뚫고 통과하려면 어떻게 해야 가능한지 묻는 질문입니다.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려운 공안을 내어 막힌 관점을 바꾸어 주는 방법입니다.

 

이와 달리 바리사이들의 질문은 예수님을 곤란에 빠뜨릴 작정으로 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어려운 공안을 단박에 깨뜨려 버리시고 나아가 듣는 이에게 감동과 혜안을 열어주셨습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단견은 어떤 질문과 상황에 매몰되어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지 못하는 데서 나옵니다. 또 다른 차원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아예 차단하고 접근하다보면 도저히 뚫고 나갈 답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은산철벽 앞에 손 놓고 멍하니 백날 서있어 보았자 넘거나 통과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바리사이들이나 지금의 우리도 어쩌면 하느님의 나라를 장소의 개념으로만 상상해서 학수고대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눈을 돌리라고 요청하십니다. 하느님의 통치가 창세 이래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는데 어딜 가서 새삼스레 찾느냐는 반문이십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법을 어기고 무시하여 외면한 것이지 본래 그대로 우리 가운데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될 거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법이 없다면 이 세상이 굴러갈 리가 없습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법을 설명해줍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법에 의해 창조되었듯이 하느님의 법을 따를 때 하느님의 나라가 여기에 실현되고 있음을 볼 것입니다.

 

눈을 돌려 본래 출발한 지점으로 회귀하면 분별이 없어지고 온통 하나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가 되면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확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분별망상을 뛰어넘고 여기니 저기니 하는 걸 넘어서 온통 하나임을 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제부터 수수께끼 같이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질문에 더는 매몰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해답은 늘 하나이며 한결같습니다.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 드리며 하느님 통치의 원리에서 멀어지지 않는 길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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