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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성전에서 성막으로의 삶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13 조회수1,465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6년 다해 연중 제33주일


<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


복음: 루카 21,5-19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림


LORENZETTI, Pietro 작, (1325)

 

 

 

한 여자 청년이 자신이 주님이 계시다는 믿음이 생긴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어렸을 때 자신은 동물을 참 좋아하는 소녀였고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햄스터를 사 주셨다고 합니다. 그 햄스터를 동생이 가지고 놀다가 그만 동생의 팔에 눌려 죽게 되었습니다. 너무 슬퍼하며 죽은 햄스터를 산에 묻어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햄스터를 꼭 살려달라고 그것을 묻으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햄스터를 고양이나 동물들이 파서 먹는다는 말을 듣고는 휴지로 싸서 묻고 큰 돌을 그 위해 올려놓았습니다.

며칠이 흘렀고 옆집에 사는 언니가 자기 집에서 뛰어나오는 햄스터를 잡아놓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햄스터를 들고 나와 보여주었는데 등에 있는 무늬가 자신의 햄스터와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너무 놀라서 당장 자신이 묻어놓은 햄스터를 보기 위해 파 보았습니다. 돌도 그대로 있었고 휴지도 그대로였지만 죽은 햄스터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한 햄스터를 다시 보기 위해 언니 집으로 뛰어갔더니만 그 햄스터도 갑자기 사라져버렸다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어린 나이에 주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믿게 되었고 주님의 존재도 믿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존재를 믿기 위해서는 내가 믿어왔던 것들이 동시에 깨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믿는 것이 주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보며 물 위를 걷다가도 자신을 믿게 되어 두려움이 생겼고 이내 물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절대 배반하지 않겠다고 목숨을 걸고 맹세까지 하였지만 예수님은 그의 확신을 깨뜨려주셨습니다.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주님께서는 우리가 지닌 확신을 깨뜨리고 싶어 하십니다. 저도 결혼해야 행복하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예쁜 짝이 옆에 앉으니 행복했던 경험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확신 때문에 주님께서 부르시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주 조금씩 저의 철옹성을 무너뜨리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확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은 확신이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행복이라고 믿어왔던 성공과 여자와 돈과 같은 것들이 결국 행복이 아니라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속아 자신의 생각을 절대적으로 믿는 것이 성경에서는 벽돌문화라고 합니다. 마치 사람들이 자신들을 믿고 일치하여 바벨탑을 쌓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단을 쌓을 때 절대 정을 대지 않은 돌로 쌓으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위하여 돌로 제단을 만들려거든, 다듬은 돌로 쌓아서는 안 된다. 너희가 정을 대면 제단이 부정하게 된다.”(탈출 20,25)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으면 흙으로 그 빈 공간을 채워야하고 불안정하여 절대로 높이 쌓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굳이 층계까지 필요가 없습니다. 높이 제단을 쌓는 것은 자신들을 믿는 것이고 이것이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알몸이 부끄러워 숨은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너희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올라가서는 안 된다. 제단 앞에서 너희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탈출 20,26)

그런데도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벽돌로 만든 으리으리한 건물이었습니다. 처음 주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성막은 벽돌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천막에 불과했고 언제든 이동이 가능하였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때는 사람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주님의 집을 큰 벽돌 건물로 지어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제자들까지 그 건물이 자신들이 낸 돈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자랑을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렇습니다. 벽돌은 하느님을 믿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을 믿는 마음입니다. 그런 자신을 믿는 마음이 허물어져야 주님께서 오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인간이 자신을 믿는 모습을 견뎌내지 못하십니다. 마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과 같이 우리가 믿어왔던 것들을 송두리째 확 무너뜨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비단 주님께서 오실 때의 내 안의 모습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때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믿음대로 상대를 판단합니다. 저것만 바뀌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보이지 않는 이면에는 내 안에서도 허물어져야 할 무엇이 존재함을 알아야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사모스 섬의 어느 농가에 나귀와 수탉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숲 속에서 먹을 것을 제대로 구하지 못한 사자가 마을 근방까지 내려와서 어슬렁거리다가 이 집 담을 넘겨다보게 되었습니다.

나귀는 사자를 보는 순간 기가 질려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못하고 이승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수탉은 어찌나 놀랐던지 지붕 위로 날아 올라가 크게 날개를 치며 죽을힘을 다해 울어댔습니다. 그런데 사자는 사자대로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귀를 찢는 듯한 소리에 기겁을 하여 숲 속으로 줄행랑을 쳤습니다. 이를 본 나귀는 사자도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자를 겁 많은 동물로 오해한 나귀는 사자를 쫓아 숲 속으로 따라 들어가면서 수탉 울음소리를 흉내 냈습니다. 사자는 생전 처음 들은 무서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 데까지 도망치다가 그래도 뒤따라오며 히히힝 거리는 나귀를 손쉽게 잡아먹었습니다.

 

너무 과신하지 말아야합니다. 과신하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 저 또한 자신도 모르게 지적 질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충고도 들었습니다.

너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 마!”

이 말은 저에게 참 고마운 약이 되었고 지금도 약이 됩니다. 사람들은 내 확신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내 확신을 무너뜨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너무 옳고 그른 것에 집중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오히려 우리보다도 옳고 그른 것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선악과를 따 먹었어도 주님은 그저 넘겨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확신을 갖는 것은 인간이 먼저였습니다. 내 안에 철옹성같이 쌓은 자신이 확신하는 무엇을 허물어뜨려야겠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내 안에서 쉬시고 내가 타인들의 안식처도 될 것입니다.

 

따라서 박해를 당하더라도 자신만을 믿고 해야 할 말을 미리 준비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이 말씀은 자신을 믿지 말고 당신께서 주시는 성령께만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만을 청하고 그분께서 이끄시는 대로 자신의 몸을 맡겨야만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신 참된 성전입니다. 우리 성전을 허물고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움직였던 성막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 바로 우리 자신의 지친 삶에 종말을 고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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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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