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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1.1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14 조회수1,514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6년 11월 14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제1독서 묵시 1,1-4.5ㄴ; 2,1-5ㄱ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당신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리스도께 알리셨고,

 그리스도께서 당신

천사를 보내시어

당신 종 요한에게

알려 주신 계시입니다.

 2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곧 자기가 본 모든 것을 증

언하였습니다.
3 이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는 이와 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때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4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에게서,

 5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2,1 “에페소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일곱 황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는 이가 이렇게 말한다.

2 나는 네가 한 일과

너의 노고와 인내를 알고,

또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너는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냈다.

3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4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5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복음 루카 18,35-43

35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36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37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38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39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0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4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42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43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어떤 남자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친해질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우선 단 둘이 있을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단 둘이 있게 될 기회가 생겼고,

호감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넌 얼굴도 예뻐.”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남자의 기대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여자는 이 말을 듣자마자

화를 내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왜 화를 냈을까요?

얼굴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도

 예쁘다는 의미인 ‘넌 얼굴도 예뻐.’

라고 한 말이 그리 잘못된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사실 이 남자는 너무 긴장이 되어서

말 한 마디를 잘못한 것입니다.

글쎄 “넌 얼굴만 예뻐.”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얼굴 빼고

다른 것은 다 형편없다는

의미처럼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듣고 기분 좋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조사 하나 잘못 썼을 뿐인데

그 의미가

완전히 바뀌고 말았습니다.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사까지 정확하게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만약 ‘알아서 해주겠지.’

라는 마음을 가지고서 말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해줄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우리 삶 안에서 종종 보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내 마음을

몰라줄 수 있지?’라는 생각만하면서

‘나와 맞지 않는다.’라고

규정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이는 주님과 우리의 관계

안에서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할 때에 ‘그냥 알아서

제게 필요한 것을 해주세요.’

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이는 실제로 주님께서 도움을

주셔도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를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어야 하고,

그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리코의

 눈먼 이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는 군중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부르짖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주님께서 이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모르겠습니까?

그런데도 그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르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소경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부탁은

 곧바로 이루어졌습니다.
스스로 무엇을 필요한지를

분명하게 아는 것,

그리고 그 필요한 것을

주님께서 해결해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면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한 믿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줍니다.

소망이란 어둠 속에

두 손을 믿음으로

모으는 것이다.

(아일)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예리코의 옛 성벽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친구가 꿈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응,

난 10억 버는 것이 꿈이야!”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친구는

 “꿈이 왜 이렇게 작니?

나는 네 꿈보다 두 배 커.

난 20억 버는 것이 꿈이거든.”

라면서 비웃듯이

웃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좋아할 것 없어.

내가 너보다 꿈을 이루는데

두 배 더 쉬울 테니까.”
생각을 바꾸면 이렇게

멋지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 나이 들어 은퇴하고

 집에 계신 남편에 대한

불평을 이야기하십니다.

집에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친구들을 너무 좋아해서

친구에게 전화만 오면

얼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구를 만나면

술을 마시고 밤늦게 들어와서

정말로 싫고 밉다는 것이었지요.

여기서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어떨까요?
은퇴하고서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아직 친구가 많다는 것은

 인기가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건강이 좋지 못해서

친구도 못 만나고,

누워만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모습이 아닐까요?
물론 매일 이렇게 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가 없지만,

가끔 그런 것이라면

오히려 감사할 일인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의 전환은

내 마음에 평화를 가져옵니다.

예리코하면 생각을 바꿔서

무화과나무에 오른 자캐오가 생각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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