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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 우리집 다람이 / 김광석 - 펌
작성자이현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14 조회수505 추천수1 반대(0) 신고

 

주: 마르코니회(가톨릭 아마추어무선사회) 고문인 시각장애자 김광석(안드레아)님의 글을 펌해드립니다.^^*


                     <아마추어무선(HAM) 교신중인 시각장애자 김광석씨>


                                                           우리집 다람이 / 김광석(HL2AWO)


  내가 사는 곳은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 산속에 있고 상수원 보호구역에 속해 있어 비교적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마당 아래 성모상 근처에서 온갖 새소리가 들려온다. 꾀꼬리, 뻐꾸기, 검은등뻐꾸기, 장끼, 박새 등 크고 작은 새들이 갖가지 소리로 나를 반겨 준다. 하지만 다 좋은 것만이 아니다. 이른 봄부터 고라니가 내려와 정성 들여 가꿔 온 텃밭의 채소들을 한 번에 다 먹어 치워 버려 나와 아내를 허무하게 만들기 일쑤다. 맛있게 잘 올라온 상추를 내일쯤 뜯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밑동까지 싹둑 잘라 먹어 치워 버렸다. 마치 면도칼로 누가 잘라 간 것처럼 빈틈없이 먹어 치웠다. 산에 초록이 넘치는데 어찌 인간이 길러 놓은 것들을 이렇게 탐낼까?

 

  화가 나서 여러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망을 치면 제일 확실하지만 예쁜 정원에 퍼런 망을 치기도 그렇고 해서 비닐을 덮기로 했다. 매일 저녁에 덮고 새벽에 다시 걷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내는 “정말 비싼 상추예요.” 하며 푸념을 하지만 우리 밥상에 올리려면 어쩔 수 없었다. 화가 나기도 하지만 자연과 나눈다고 생각하면 싱긋 웃게 된다. 이 또한 우리 인간들이 그들의 먹이를 다 가져가는 통에 이런 일이 일어나겠지 하며 마음 짠하기도 하다. 며칠 전에는 아내가 비닐을 걷으러 새벽에 나갔다가 기겁을 했다. 비닐을 걷으려니 그 안에서 뭔가 버둥대는 소리에 고라니가 그 안에 들었나 하여 놀라 막대기로 치니 그 속에서 수꿩인 장끼가 겨우 빠져나가 휙 날아가더란다. 난 웃으며 “그거 내가 잡았으면 꿩만두나 꿩탕 감이었는데 아쉽네.” 하며 웃었다.


  우리 집엔 이렇게 자연의 식구들이 좋든 싫든 많이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집에 귀여운 식구가 하나 더 있다. 재작년인가부터 다람쥐 한 마리가 마당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새끼였는데 줄무늬가 선명한 다람쥐가 마당 이곳저곳을 누비며 다니고 있다. 며칠 그러다가 다른 곳으로 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벌써 2년째 우리 집에 살고 있다. 아내가 너무 귀엽다 하여 작년 가을에는 데크와 층계에 밤과 도토리를 몇 개씩 놓아 주었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와 작은 두 발로 도토리를 안고 사라지는 모습을 우리는 유리창 안에서 조심스럽게 지켜보곤 하였다. 매일 먹이를 놓아두는데 없어지는 것으로 보아 다람쥐가 가져가는 것이 틀림없었다. 올해에도 그 다람쥐가 여전히 마당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 2년이나 되었는데 그리 크지 않은 작은 체구다. 장독대에 올라가 있기도 하고 나무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아내가 마당에서 일을 하면 조심히 다가와 바라보다가 멀리 달아나곤 한다.

 

  우리는 이 귀여운 식구를 “다람”이라 이름 지었다. 며칠 전 아내와 데크에 앉아 차 한 잔을 하고 있는데 가까이에 있는 왕벚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줄무늬가 가지 끝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다람이다! 가느다란 가지 끝에 있는 버찌를 곡예하듯이 흔들리며 먹고 있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엊그제에 보니 안테나가 있는 전봇대 담쟁이 넝쿨을 따라 올라가 안테나 밑까지 가서 앉아 있었다. 안테나 점검을 하러 올라갔나? 주인이 햄(HAM)인지를 아는 모양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반가운 일이 생겼다. 데크 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살며시 바라보니 다람쥐 두 마리가 서로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다. 새로운 친구가 생겼나? 아님 여친, 또는 남친? 즐거운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자연 속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주신 주님의 위대함을 새삼 새기게 된다. 우리가 이렇게 우리에게 주신 자연을 잘 지키며 공존하는 것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묵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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