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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하느님은 우리에게 빚이 없으십니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15 조회수2,025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6년 다해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 >


독서: 요한 묵시록 4,1-11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아내가 싸준 도시락과 편지란 글이 있습니다. 한 불우하게 자란 열등감 많은 청년이 착한 아내를 얻으며 변하게 된 내용입니다. 아내에게 언제나 부족한 남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이것을 알아챈 아내가 도시락에 매번 저는 당신이 자랑스러워요!”란 편지를 넣어준 것입니다. 처음엔 그냥 자신을 위로해주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란 생각에 막연한 고마움만 지니고 살았는데 언제부턴가는 아내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회사에 두 시간 먼저 출근해서 청소와 일을 하였습니다. 이에 이십 년간 지켜본 사장이 그를 부사장으로 승격시켜 주었습니다. 여전히 그 날 점심 도시락에도 저는 당신이 자랑스러워요!”란 편지가 넣어져있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믿어준 힘은 남편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아내에게 생색을 낼 수 있을까요? 우리 또한 주님께서 믿어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우리가 주님을 믿고 구원받게 된 것이 우리의 노력의 대가인 양 그분께 무언가를 요구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어제 동기 신부들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야기 주제가 수능을 위해 어떤 준비들을 하고 있는가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모여서 기도를 하고 안수를 주는 등의 일정을 각 성당에서 잡고 있었습니다. 한 신부가 지친 듯이 그런 거 안 하면 안 되나?”하며 한탄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그 말에 동의가 되었으나, 이내 현실상 그럴 수 없다는 분위기가 되었고 무거운 분위기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왠지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었기에 사회에서 소위 성공한 자리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텐데 이것저것 더 자신에게 맞춰달라고 요구한다면 남편을 향한 자랑스러움은 조금씩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주님은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하라고 하시고, 또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청하라고 하십니다. 나머지는 하느님 나라를 찾는 이에게 주님께서 알아서 덤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청해야 할 것은 성령님뿐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그분이 우리가 무언가를 청하면 당연히 들어주셔야 하는 것처럼 살고 있다면 아직은 우리 처지가 어떤 지를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기도를 감사로만 채워도 그분의 은혜를 충분히 감사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한은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 안에는 주님의 어좌가 놓여있었고 그 어좌 둘레에는 스물네 개의 어좌가 더 놓여있었습니다. 그들은 각기 왕관을 쓰고 있었는데, 앞뒤로 눈이 달린 네 생물이 밤낮으로 주님께 거룩하시도다!”를 외치며 영광과 영예와 감사를 드릴 때마다 그 스물두 개의 어좌에 앉아있던 원로들이 각기 자신의 왕관을 하느님의 어좌 앞에 던지며 엎드려 주님을 경배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일곱 가닥으로 머리를 땋았던 삼손이 그 성령의 힘을 잃자 눈이 뽑히게 됩니다. 예언자 예레미야의 예언을 귀담아 듣지 않아 치드키야 왕의 눈이 뽑히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흙으로 태생소경의 눈을 만들어주시고, 바오로도 하나니아스의 안수로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나가게 됩니다.

, 위의 광경은 하느님 나라의 사람들이 성령의 힘으로 각자 자신의 왕 됨을 포기하여 주님 앞에 엎드려 찬미를 드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느님 나라에서는 주님께 경배만 드릴뿐 자신을 위한 다른 것을 요구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것은 주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희생하여 우리 생명을 구해주신 것도 부족하다는 모습으로 보여 주님께는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하느님께 빚을 받으러 온 것처럼 앉아서 빨리 갚으라고 독촉하는 듯이 이것저것을 청하지 말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주제의 예화로 우리나라 전쟁 때, 미국 폭격기가 서울에 폭탄을 투하하려 할 때 아직 피난가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그 서울 항공에 예수님께서 나타나 그들이 폭탄을 투하시키지 못하게 한 기록이 있습니다. 서울이 불바다가 되지 않게 되었던 것은 밑에서 지키고 있었던 군인들의 공일까요, 아니면 위에서 지켜주신 예수님의 덕일까요? 어찌 군인이 서울을 지켰다고 주님 앞에서 자랑할 수 있을까요?

이런 강의를 하고 나오는데 전직 군인이신 분이 기분이 상한 듯이 신부님은 군인이 지킨 것이 아니다라고 해서는 안 되고, ‘군인도 지켰다라고 하셔야 합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전히 주님 앞에서 우리가 무슨 큰일을 한 것처럼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 이 세상에서의 삶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거룩하시다, 혹은 감사와 영예와 찬미를 드리기만 해도 행복할 사람이 되기를 연습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이것저것을 해 달라며 청하는 것도 자녀로서 나쁜 행위는 아니지만 그저 종으로라도 써 주면 감사하겠다는 마음으로 돌아오던 탕자의 그 감사를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신앙의 목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하는 모든 기도 중 단 하나도 들어주지 않으셔도 여전히 우리에게 빚이 없으신 분이시고,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는 모든 일을 해 드렸을지라도 여전히 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다만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루카 17,10)라고 말해야 하는 처지인 것입니다. 요한에게 천사가 보여주었듯이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주님을 찬미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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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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