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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1.1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16 조회수2,079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6년 11월 16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제1독서 묵시 4,1-11

나 요한이

1 보니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들었던 그 목소리,

곧 나팔 소리같이 울리며

나에게 말하던 그 목소리가,

 “이리 올라오너라.

이다음에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2 나는 곧바로 성령께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하늘에는 또 어좌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어좌에는

 어떤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3 거기에 앉아 계신 분은

벽옥과 홍옥같이 보이셨고,

어좌 둘레에는 취옥같이 보이는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4 그 어좌 둘레에는 또 다른

어좌 스물네 개가 있는데,

거기에는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쓴 원로 스물네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5 그 어좌에서는 번개와 요란한

소리와 천둥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좌 앞에서는 일곱 횃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6 또 그 어좌 앞에는

수정처럼 보이는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좌 한가운데와

그 둘레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 달린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7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황소 같았으며,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습니다.
8 그 네 생물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개씩 가졌는데,

사방으로 또 안으로 눈이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낮 쉬지 않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
9 어좌에 앉아 계시며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께 생물들이 영광과

영예와 감사를 드릴 때마다,

10 스물네 원로는 어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금관을

어좌 앞에 던지며 외쳤습니다.

 11 “주님, 저희의 하느님,

주님은 영광과 영예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님의 뜻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고 창조되었습니다.”

복음 루카 19,11ㄴ-28

그때에

11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5 ─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어젯밤 뉴스를 보다가

 ‘슈퍼문’이라는 말을 보게 되었습니다.

달이 지구와 가장 가까워졌을 때

나타나는 크고 밝은 보름달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슈퍼문의 영향으로 해수면이

 올라가서 해안가 저지대가 침수되는

현상이 있었다는 기사였지요.

문득 슈퍼문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비록 하루가 지났지만

달을 보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여는

순간 너무 추운 것입니다.

얇은 운동복 하나 입고서

밖으로 나갔으니까요.

깜짝 놀라서 다시 따뜻하고

훈훈한 실내로 들어오려다가

 ‘조금만 참자’라는 생각을 갖고

서서 달이 떠있는 곳을 쳐다보았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크고

밝은 달은 처음 본 것 같습니다.

 만약 춥다고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면

그렇게 아름다운 달을 볼 수 있었을까요?

추워서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달을 보러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귀찮다고 또 춥다고 밖에 나오지

않았으면 따뜻한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면서 시간을 보냈겠지요.

그러나 68년 만에 찾아왔다는

슈퍼문은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편안함을 위해서 또 순간의 만족만을

위한다면 당연히 더 큰 것을 얻지 못합니다.

불편함을 극복하는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분명히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순간의 만족만을 위한

 삶을 선택할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래서 그 자리에 그냥 안주하고 마는

 우리들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 말씀을 보면서

 ‘주님께서는 욕심이 많으신 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왜냐하면 오늘 비유 말씀을 보면,

원금을 그대로 가져온 사람에게

 심하게 혼을 내시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가 가져온 돈을 빼앗아서

열 미나를 가진 사람에게 주지 않습니까?

솔직히 원금을 잃어버릴까봐

 잘 보관하고 있었다는 말이

틀린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혹시라도 투자를 잘못했다가

가지고 있었던 그 한 미나마저

없어진다면 어떻게 합니까?
분명히 주님께서는 욕심이 많으십니다.

그러나 그 욕심은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받은 미나뿐 아니라

미나의 숫자만큼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까지 주시지요.

그렇다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당신께서 주신 것으로

 어떤 면으로든 이윤을 남기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재능,

내가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밖에 모든 것들이

이 세상 안에서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내게 제공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제공된 것들을 통해

충실히 일하는 사람은 그만큼의

보답을 해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아름다운

슈퍼문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이 받은 것들을 사용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더 좋은 것들을 절대로

 누릴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사람들과 다투는 것이 싫다면서

좋은 것이 좋다면서 그 사람이

 나쁜 길로 가더라도 가만히 있다면,

 능력과 재주가 있으면서도

 귀찮다는 이유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산다면 등등……. 
주님의 일을 하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으로부터

큰 보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소나기 30분’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인생의 소나기 먹구름 뒤에는

 언제나 변함없는

태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그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채규철)

68년만에 찾아왔다는 슈퍼문입니다.

어린아이의 낙서

(‘따뜻한 하루’ 중에서)

어느 마을 담벼락과 집 벽이

누군가의 이름으로

 도배되기 시작했습니다.

지워도 다음날

또 어김없이 적혀 있습니다.

지속되는 낙서를 보며,

마을 주민들은 화가 치밀었습니다.

급기야 마을 사람들은

 담벼락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낙서를 하는 범인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범인은 놀랍게도

어린 남자아이였습니다.

누가 봐도 깔끔한 옷차림,

예의 바른 평범한

어린아이였습니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왜 벽에 낙서한 거니?"
아이는 할아버지의 물음에

울먹이며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한참을 울먹이던 아이는

벽에 한 낙서가

엄마의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궁금한 마음에

다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왜 엄마 이름으로 낙서를 한 거니?"
아이는 할아버지의

물음에 대답했습니다.

"저는 건넛마을에 사는데

우리 엄마가 지금 많이 아파서요...

혹시나 많은 사람들이

엄마 이름을 보고 함께 불러주면

 금방 낫지 않을까 해서요.

할아버지 잘못했어요."
순간 주변에 있던 마을 사람들은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주변의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쏟아주고 있었을까요?

나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기도해주고 사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아이의 낙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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