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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도의 집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18 조회수1,199 추천수3 반대(0) 신고




 

기도의 집

 

- 윤경재 요셉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루카 19,45~46)

 

 

 

천주교 교우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스스로 기도할 줄 모른다고 여기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럼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게 잘하는 것이냐 반문하면, 조리 있고 능숙하게 말하며 듣는 이들에게 공감을 주는 내용이 나와야 훌륭한 기도라 생각한다고 답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마태오 복음 65~7절에 올바른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나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요약하면 ‘1,숨어 계신 아버지께 직접 개인적으로 기도하라. 2,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3,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 4,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입니다.

      

전통적으로 이 네 가지 원칙에 맞는 기도법이 천주교에서 전해오는데 바로 관상기도입니다. 관상기도의 최종 목적은 하느님과의 일치입니다. ‘하느님의 이끄심단계에서 수동적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영적독서(lectio), 묵상(meditatio), 구송(oratio), 관상(contemplatio)의 네 단계를 거치면서 우리를 점차 하느님과의 일치로 이끌어줍니다. 첫번째 단계인 영적독서는 주님을 만나러 내 생활에 공간을 만들고 시간을 마련하는 단계입니다. 묵상은 우리와 다른 언어체계를 가지고 계신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통해 오신 육화를 떠올리며, 복음 말씀을 상상하고 추리하는 단계입니다. 구송은 하느님을 향한 단순한 열망이 응축된 뒤 솟아난 마음속 울림을 표현합니다. 마지막 관상 단계는 <하느님 안에서 쉬는> 단계이고, <애정 어린 응시>, <황홀한 주의>, <앎을 넘어선 앎>의 단계가 됩니다.

 

종교개혁 이후 오직 믿음이라는 주장 아래 관상기도는 인간의 노력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고 하여 개신교 쪽에서 배척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신교 교인들이 드리는 기도는 어느새 말을 유창하게 하고 열정과 감동을 주는 행위가 되고 말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영향이 알 게 모르 게 천주교에도 미쳤습니다.

 

기도에 대하여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도 귀중한 자료입니다.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 8,26~27)

 

성령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신다는 바오로 사도의 이 가르침은 참된 기도가 무엇이며 어떤 자세로 기도에 임하여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성령의 움직임을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느낄 수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부족하고 나약한지 깨닫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자신이 중죄인이었다고 고백하게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죄를 고백할 때 기도의 위력은 성령을 통해 우리를 내적으로 변화시킵니다. 주님을 향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막다른 절벽으로 한 걸음 내딛을 용기를 생기게 합니다. 뻔뻔스러울 정도로 하느님께 매달릴 힘을 줍니다.

    

용기는 인간의 성숙에 반드시 필요한 원동력입니다. 용기를 품는 순간 인간이 자기로부터 빠져나가는 출구를 발견하게 되고, 용기가 있어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자신이 죄인이었음을 공언하게 하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실존을 변모시켜주는 출발점입니다.

 

기도를 잊어버릴 때 우리 안에 에고의 우상을 만들게 되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진실을 외면하게 됩니다. 무슨 일을 저지르더라도 알량한 죄의식마저 허물어집니다. 그러니 강도와 다를 바 없게 됩니다.

 

기도의 집은 하느님을 만나러 여러 사람이 모이다 보니 생긴 필요적 공간입니다. 처음엔 건물을 유지하고 필요한 인원을 거느리고자 헌금을 받았습니다. 속죄와 간구를 바치기 위하여 몰려든 유다인들이 봉헌금과 여행 경비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수적으로 장사꾼이 생겨났습니다. 신앙이 외적 형식으로 기울 때쯤 본말이 전도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인간 집단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고질병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사태가 처음부터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강력한 경고를 성전 정화라는 퍼포먼스를 통하여 교회에게 미리 내려주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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