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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잊어도 좋을 그 많은 일들을 이제라도 /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23 조회수1,086 추천수5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이 때문에 배다른 그의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고 결국은 형들의 계략에 죽을 직전까지 갔다. 그렇지만 그는 구사일생으로 죽지 않고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 파라오의 사람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곳 여자와 결혼하여 아들도 낳아 아들 이름을 '므나쎄'라고 지었다. 이 말은 '잊어버리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로 명사형으로는 '잊어버림'이라는 뜻이란다.

 

그는 왜 아들의 이름에까지 '잊어버림'을 기억하도록 지었을까? 그에게는 참으로 잊어야만 할 사연들이 많았다. 어린 그를 죽이려고 깊은 구덩이에 던져 놓고 자기들끼리 키득거린 형들의 그 웃음소리가 생각나면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포티파르 아내의 유혹을 거절했는데도 성폭행으로 체포되어 옥에 갇혔던 일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 젊은 여자의 유혹이 꿈에라도 나타나는 것은 죽는 것 보다 싫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게 생각나면 밤새 술 퍼 먹어도 마음이 시원찮을 지경이었으리라.

 

이래서 유대인들은 오늘날에도 회당에서 요셉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 요셉이 포티파르의 아내를 '거절했다(바예마아인)'라는 단어가 나오면, 특별한 악센트(샬셀렛)를 넣어 5초 동안 길게 영창으로 소리를 끌어가면서 읽는단다. 그 몹쓸 유혹을 거절하는데 그만큼 갈등이 시간의 길었고 그 강도가 컸다는 것을 표하기 위함이란다.

 

이러한 요셉이 겪은 그것보다 더한 잊어버림에 대해 예수님도 세상 끝날 때를 차분히 기다릴 것을 수차 제자들에게 간곡히 당부하셨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대어 박해할 게다. 또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임금과 총독들에게로 끌고 갈 것이다. 이런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의 기회이다. 그러나 너희는 변론의 말을 미리 준비하지 마라. 어떤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 못하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루카 21,12-15 참조)

 

하느님 자녀가 되고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먼저, 세상을 거꾸로 산다는 의미일수도. 하느님 말씀에 그 많은 예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게 바로 박해와 순교이다. 교회는 어떠한 순간에도 그것이 무서워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이를 하느님의 선물이요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한다.

 

박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디서든지 하느님 증언을 할 좋은 기회이다.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반대의 것을 추구하기에, 때로는 오해받거나 비방과 미움도 산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적인 보호를 기대하거나, 손해를 막아 주시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모든 고통을 결국은 주님께서 하늘 나라에서 보상해 주시고,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소홀히 하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안다.

 

믿음의 삶을 살다보면 때로는 노심초사 불안, 초조, 근심이 쌓일 게다.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다보면 세상살이와의 괴리에 종종 걱정도 인다. 오해도 사고 부득이 변명도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도 당신 이름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심지어 박해를 받더라도 걱정하지 말라신다. 그저 잊어버리는 게 상책임을 당부하신다. ‘때가 오면당신께서 적대자에게 맞서거나 반박할 언변과 지혜를 주시겠단다.


바오로 사도도 감옥에 갇혀 있었음에도 필리피 신자들에게 이 점을 권고한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필리 4,4-6) 바오로 사도가 당부한 이 기쁨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아시며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에서 나옴을 일깨운다. 그래서 거듭거듭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란다.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감사하는 마음이라면 하느님께서 우리 소원을 들어 주신다나.

 

예수님께서도 이 인내를 동반한 기다림을 정말 구체적으로 언급하셨다. “부모형제와 친척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이에게 미움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는다. 너희는 인내로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6-18 참조)”

 

사람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진면목이 드러난다. 그 순간 그 사람이 평소에 생각하고 추구하던 가치가 어떤 것인지 드러나고 그가 하느님 사람인지 세상의 사람인지가. 진짜 그리스도인은 박해의 그 순간에도 세상의 헛된 인연이나, 재물이나 무기에 의지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주신 한 말씀이 우리를 지키는 무한한 힘의 원동력이니까. 하느님 말씀이 우리의 방패요 인내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다.

 

이렇게 하느님과 함께하면 그분께 감사드릴 수 있는 영광을 누리는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아들의 이름에까지 '잊어버림'을 기억토록 한 요셉도 이국에서 아버지 야곱을 다시 만나는 기쁨을 누렸다. 잊어도 좋을 그 많은 일들은 하느님께 남겨두고 그분만을 보면서 나아가자. 때가 오면 그분께서 어떠한 적대자에게도 머리카락 하나라도 잃지 않도록 반박할 수 있는 언변과 지혜를 주신단다. 그러니 오직 그분만을 바라보면서 세속의 어떠한 한도 다 잊도록 하자. 교회의 한 해가 서서히 저무는 지금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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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박해,순교,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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