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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1.2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23 조회수1,21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6년 11월 23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제1독서 묵시 15,1-4

나 요한은

 1 크고 놀라운 다

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하느님의 분노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
2 나는 또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유리 바다 위에는 짐승과

그 상과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를 무찌르고 승리한

 이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수금을 들고,

 3 하느님의 종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주님께서 하신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

 민족들의 임금님,

 주님의 길은 의롭고

참되십니다.
4 주님, 주님을

경외하지 않을 자 누구이며,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을 자 누구입니까?

정녕 주님 홀로 거룩하십니다.

모든 민족들이 와서

주님 앞에 경배할 것입니다.

주님의 의로운 처사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복음 루카 21,12-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언젠가 전철을 이용했을 때의

 일 하나가 떠올려집니다.

인천에서 전철을 타고서

서울로 가고 있는 중이었지요.

전철 안은 아주 조용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었고,

저 역시 조용히 책을 보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아주 큰 목소리가 들립니다.

조용한 전철 안에서 울려 퍼지는

 주위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이 소리에 사람들은

인상을 찡그리면서 목소리의

주인공인 중년으로 보이는

 자매님을 쳐다 볼 뿐이었습니다.

이분께서 휴대전화에 대고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어떻게 그 친구는

남을 배려할 줄 모르니?”
‘당신이나 전철 안의

사람들을 배려 좀 하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배려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은 바라보지 못하고,

남의 배려하지 못함에 대해서만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어떤 어르신이 도저히

못 참겠는지 “좀 조용히 갑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자매님께서는

듣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큰 소리로 통화를 하셨습니다.

어르신은 다시 힘주어서

 “조용히 좀 갑시다.”라고

 크게 말씀하시더군요.

그러자 이 자매님께서

하시는 말씀.
“제가 언제 시끄럽게

말했다고 그래요?”
‘방귀 뀐 놈이 성낸다.’라는

속담이 생각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전혀 보지 못하고,

남의 문제점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 이러한 모습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 자신이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옳고,

 남은 틀렸다면서 화를 낼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내가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기준이 되어 사랑으로

나의 이웃을 배려할 수 있

다면 어떨까요?

 세상은 훨씬 더 함께 살아가기에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들을 늘 배려해주십니다.

어렵고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면서 배려하시고,

또한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배려해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박해의 위협을 당해도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대신 우리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바로 ‘인내’이지요.

인내로써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주님의 기준을 따라서 인내해야

할 것을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배려하지 않고 내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단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손해 보는 것이 싫다면서

사랑하는 것을 멈춰버리는 것

 등이 인내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배려하고 사랑하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이러한 인내로써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일과 삶을

즐길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배려가 시작된다.

세상은 배려하는 사람들의

 힘으로 발전해왔다.

(이어령)

인내로써 생명을 얻으신 갑곶성지의 순교자들.

그냥 좋은 것

(최천호)

좋은 음악이란

내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이다.

때론 신이 나고

때론 눈물 나게 순간

그 기분에 따라

다가오는 것이다.
좋은 글이란

온갖 언어 동원하여

 포장한 글이 아니라

읽는 순간 가슴 떨리게

공감되는 글이다.

그것이면 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란

나와 잘 맞는 사람이다.

생각도 대화도

 마음도 잘 맞는 사람이다.

 그걸로 충분히

감사할 수 있지 않는가?
좋은 집이란 대궐 같은

집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이 넘치고

피곤한 몸과 맘 편히

쉬게 편안한 공간이다.
이렇듯 좋은 것이란

내 상황과

기분과 마음에 따라

때론 크게 다가오거나

시시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 글을 보면서 예전에

어떤 신부님과의

일이 생각납니다.

그 신부님께서는 제게 어떤

노래를 들려주면서

 “너무 좋지 않니?”

라고 묻습니다.

 문제는 저에게 그 노래가

별로라는 것이지요.

 시끄럽기만 하고,

도대체 가사 내용도

귀에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노래는

 좋은 노래일까요?

나쁜 노래일까요?
그런 기준 자체가 의미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요?

중요한 것은 남의 기분과 상황도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느 성당에서 본 독특한 성모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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