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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변화의 시간 _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24 조회수1,436 추천수5 반대(1) 신고


 

변화의 시간

 

_ 윤경재 요셉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루카 21,27~28)

 

 

복음서에 '때'라는 단어가 무척 많이 나옵니다. 짧은 오늘의 말씀 안에서도 '그때에'라는 표현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신약 성경 원문인 그리스어에서 때를 나타내는 부사와 명사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사용례를 보면 약간씩 의미상 차이가 발견됩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나오는 그때에는 부사 ‘tote’ 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뜻은 앞의 내용이 다 성취되고 난 뒤에 동시적으로라는 뉘앙스입니다.

 

요한복음서에서는 때라는 명사형 ‘hora’ 라는 단어가 18회나 나옵니다. 대표적으로 24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131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입니다. 이 말뜻은 하느님께서 예정하시고 예수께서 따르시는 주님의 때라는 뉘앙스가 담겼습니다. 요한 저자 특유의 신학적 사상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밖에 일반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때와, ~ 시간이라는 단어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는데 그 의미상 차이를 잘 구분하여 봐야합니다. 명사형 ‘chronos’ 는 순차적으로 다가오는 물리적 시간을 뜻하며 누구에게나 골고루 주어진 양적인 시간을 뜻합니다. 신약성경에 55회 나타납니다. 그 누구도 시간의 흐름인 크로노스를 멈출 수 없습니다. 물리적으로 한계가 정해진 시간이란 뉘앙스가 읽힙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시간이란 뜻입니다.

 

명사형 ‘kairos’ 는 일반적인 시간 크로노스가 아니라 결정적 순간을 뜻합니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 절대적인 순간과 장소를 의미하며 시의적절한 시간’, ‘제때에’, ‘무르익었을 때란 뉘앙스가 담겼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약 85회로 제일 많이 쓰였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이 개입하여 변화를 일으키는 시간으로 심리적 시간을 뜻합니다. 생의 철학자 베르그송이 말하듯 이 시간의 길이는 늘이고 줄일 수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은 더디 가고 즐거운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렇게 변화 가능한 시간을 카이로스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멈춘 것같다는 표현도 나올 수 있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마르1333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마태1330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입니다.

 

 

며칠 전에 선종하신 김대군 파트리치오 신부님 이야기를 전하시는 사제가 많습니다. 김 신부님께서는 강남성모병원 원목과 병원장으로 오래 근무하셔서 고통스러운 환자를 돌보는 병원사목의 길잡이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황반변성이란 지병으로 그만 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당신이 환자입장이 된 것입니다. 위로를 주는 사람의 위치에서 위로받는 자로 처지가 바뀐 것입니다. 멀쩡히 활동하시던 분께서 갑자기 눈이 보이질 않게 되자 적잖이 낙담하고 힘드셨을 텐데 주님께서 새로운 사명을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이라 받아들이셨답니다. 그러고는 사제평생교육원에 들어가시어 교구사제의 고해사제로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셨답니다. 자신은 눈이 보이지 않지만, 그대신 듣는 것은 자신 있다라고 늘 말씀하셨답니다.

 

그분께 고해성사를 보신 신부님들은 고해소 안, 그 짧은 시간이 정말로 주님을 만난 듯 자신들에게 커다란 변화의 시간이 되었으며 나중에 신자들과 고해성사를 거행하는데 본보기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단순히 고해성사만으로도 이렇게 큰 변화가 올 줄 미처 몰랐다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고해신부로 성인품에 오르신 필립보 네리 성인의 향기가 났다고 전합니다.

 

김대군 신부님께서는 자신에게 다가온 고난이라는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를 통해 변화의 시간인 카이로스로 시의 적절히 바꾸어 주는 체험을 남기고 가신 것입니다.

 

이번 주간은 연중 마지막 34주입니다. 그러기에 계속해서 종말에 관한 독서와 복음을 읽고 있습니다. 종말은 어찌 들으면 공포요 혼란의 상징처럼 다가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을 올바로 찾는다면 오히려 허리를 펴고 머리를 쳐들 수 있는 변화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종말이 어떤 때로 다가오는지 깊이 묵상하여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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