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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11.2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24 조회수1,257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6년 11월 24일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제1독서 묵시

18,1-2.21-23; 19,1-3.9ㄱㄴ

나 요한은

 1 큰 권한을 가진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의 광채로 땅이 환해졌습니다.
2 그가 힘찬 소리로 외쳤습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바빌론이 마귀들의 거처가 되고,

온갖 더러운 영들의 소굴,

온갖 더러운 새들의 소굴,

더럽고 미움 받는 온갖

짐승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
21 또 큰 능력을 지닌 한 천사가

 맷돌처럼 큰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며 말하였습니다.

 “큰 도성 바빌론이 이처럼

세차게 던져질 터이니,

다시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22 수금 타는 이들과

노래 부르는 이들,

피리 부는 이들과

나팔 부는 이들의 소리가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고,

어떠한 기술을 가진 장인도

다시는 네 안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맷돌 소리도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을 것이다.
23 등불의 빛도 다시는

 네 안에서 비치지 않고,

신랑과 신부의 목소리도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을 것이다.

너의 상인들이

땅의 세력가였기 때문이며,

모든 민족들이 너의 마술에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다.”
19,1 그 뒤에 나는 하늘에 있는

많은 무리가 내는 큰 목소리

같은 것을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권능은 우리 하느님의 것.

2 과연 그분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다.

자기 불륜으로

땅을 파멸시킨

 대탕녀를 심판하시고,

그 손에 묻은 당신 종들의

피를 되갚아 주셨다.”
3 그들이 또 말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 여자가 타는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간다.”
9 또 그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다.’

고 기록하여라.”

복음 루카 21,20-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21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22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23 불행하여라,

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이 땅에 큰 재난이,

이 백성에게 진노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24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25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저는 인천의 주교좌 성당 근처에서

참 오랫동안 살았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살았었고,

고등학교는 이 근방의 학교였습니다.

또한 신학교에

들어가서는 방학 때마다

교구 행사를 위해서

수시로 드나들었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교구청에만 두 번 근무하면서

 또 7년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오래 인연을 맺고

살다보니 이곳 지리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골목골목까지도

상세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근방의 모든 거리가 너무나도

익숙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제 성지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교구청 주변을

운전하기가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길은 좁고 차가 많아서

당황스러웠다는 것이었지요.

이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곳을 숱하게 지나다녔지만

이런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거든요. 왜 그럴까요?
이 거리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보면서 다녔던 거리였기

 때문에 복잡하다는 것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지요.

 사실 알게 되면 별 것이

아닐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우리들은 알려는

노력보다는 그냥 어렵다고

또 힘들다면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때가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수영을

배울 때가 생각납니다.

 다른 운동과 달리 배우는 것이

쉽지 않았고

실력이 늘지 않는 것입니다.

팔과 다리를 아무리 힘차게

저어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물 밑으로만 빠질 뿐이었지요.

‘수영은 나한테 맞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으로 그냥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가르쳐주시는 강사님께서

딱 열흘만 열심히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 말에 힘을 얻어서

 계속 수영장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열흘 뒤부터는

수영실력이 느는 제 자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포기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포기하면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새로운 앎으로

풍요해질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을 보여주는

오늘 복음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2,000년 전의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이라고 한정을

 짓지 말고 현재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전쟁의 폭력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있습니까?

 더군다나 자연의 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깨닫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표징은 우리 삶 안에서

계속 나타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표징을 통해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 줍니다.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주님을 맞이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더 열심히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또 실천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 안에서 계속 나타나는

표징들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어떤 것도

소홀히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고생이 곧 인생의

 진정한 모습이다.

우리의 마지막 기쁨과 위안은

고생한 추억에 다름이 아니다.

(알프레도 드뮈세)

모르면 허탕칠 수 있습니다.

안다는 것

동사 알다(知)는

 명사 알(卵)에서

 파생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서 어떻게 알아야

 하는 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즉, ‘아는 행위’는 사물과

현상의 외피뿐만 아니라,

가장 근본적인 내부까지

진득하게 헤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저

겉으로만 보고 판단하면서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러한 제한된 정보로 어떻게

진면목을 알 수 있을까요?
이는 주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도대체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그래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런데 우선 주님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냥 남들 하는 것 따라하면서

흉내 내기 식의 앎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주님을

 알도록 노력합시다.

그냥 겉만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알도록 말이지요. 

허수아비 부부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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