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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 박창광님을 기도중에 기억해주세요!
작성자이현철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24 조회수1,008 추천수4 반대(0) 신고

 

주: 며칠 전에 '따뜻한 이야기방'에서 이원규님의 '박창광 스테파노 수사님을 찾는다'는 내용의 글을 보고

     제가 인터넷검색을 통해 그분이 지금 안양 메트로 요양병원(031- 467-9018)에서 투병중인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전화로 근황을 문의해보니 지금도 아래 사진과 같은 상태로 계시답니다.

     아마 윤경재님의 말씀대로 이제는 그분이 예전에 VIP로 모시고 봉사했던 수많은 노숙자들을 위해

     병상에서 중환자로 기도하고 계시는 것 같아 관련 신문기사(2011년)를 올려봅니다.

     기도중에 박창광님을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ㅠㅠ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 중인 ‘노숙인들의 벗’ 박창광씨 - 펌      

 

                                              청춘을 바쳐 봉사한 참 그리스도인

 
 
 
▲ 노숙인들을 그토록 사랑했던 박창광씨가 뇌출혈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어서 힘겹게 병마와 싸우고 있다.
  

  노숙인에게 밥을 주던 사랑의 손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결핵을 앓던 노숙인을 업고 힘차게 발을 내딛던 두 다리도 이제는 꿈쩍하지 않는다. 헐벗고 굶주렸던 노숙인들의 '벗' 박창광(스테파노·68)씨는 이제 그토록 사랑했던 노숙인들 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최근 뇌출혈로 쓰러진 그는 이제 식물인간이 됐다.

  박씨는 청춘을 바쳐 노숙인들을 사랑하고 돌봤던 이 시대의 '착한 사마리아인'이었다. 그에게 노숙인들은 또 한 명의 예수그리스도였다. 1978년 5월, 그가 노숙인들을 위해 설립한 용산 베들레헴의 집은 한국 교회와 사회가 노숙인 나눔터, 쉼터를 설립하는데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의 '노숙인에 대한 사랑 이야기'는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수의 작은 형제회' 수사로 지내며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동료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세상으로 나왔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용산 채소시장의 노숙인들이었다.

  당시 이곳에는 결핵환자인 노숙인들이 많았다. 장애인, 정신이상자, 알코올중독자 등 노숙인병을 앓던 이들도 즐비했다. 그가 헐벗고 굶주리던 이들을 위해 문을 연 곳이 바로 '용산 베들레헴 집'이다. 서너 평 정도의 조그만 천막에서 간단한 음식만 대접하는 소박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 조그만 천막에 한 사람 두 사람 모이더니 나중에는 500명 가까운 노숙인들이 이곳을 찾았다. 급기야 1980년 대 중?후반에는 이곳에서 매일 200여 명이 숙식을 해결하고, 500여 명이 매 끼니를 때울 정도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심장과 허리가 좋지 않아 힘겨운 삶을 살았지만, 그의 삶의 우선순위는 늘 노숙인들이었다. 그는 30~40대 청춘을 용산 베드레헴의 집에서 노숙인들과 함께 보냈다. 그러던 1992년 어느 날 그는 베들레헴의 집을 떠났다. 당시 그의 수중에는 3만 원이 전부였다. 이후 그는 20여 년간을 서울 인사동 한 찻집의 한 평 남짓한 방에서 홀로 살아왔다. 최근까지 그는 복지관에서 끼니를 해결한 적도 많았다.

  현재 그는 안양 메트로 요양원에서 홀로 병마와 싸우고 있는 중이다. 비록 식물인간이 돼 말을 할 수 없지만 그의 영은 여전히 외치고 있다. "내 청춘을 다 바쳐 노숙인들과 함께한 시간은 하느님께서 내 다른 한 손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쓰라 말씀하신 아름다운 부름이었습니다. 노숙인들에게 당장 필요한 건 따뜻한 밥 한 끼였습니다."


권선형 기자 (peter@catimes.kr)
[기사원문 보기]
[가톨릭신문  2011.06.26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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