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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천 년 왕국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24 조회수1,514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6년 다해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 그들은 저마다 자기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나는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


독서: 요한 묵시록 20,1-4.11-21,2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렘브란트 작

 

 

저는 성경이 나에게 보내진 연애편지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는 하지만 눈물이 나지 않는다면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처럼 보기 때문입니다. 연애편지는 원래 남이 읽으면 유치하지만 당사자가 읽으면 가슴 뭉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요한 묵시록의 내용들은 참으로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들려서 어렵기만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성경 어느 구절을 읽더라도 그걸 통해 주님께서 나에게 직접 해 주시려고 하시는 말씀이 무엇일까?’를 물어봅니다. 따라서 자칫 묵시록이 미래에 관한 내용이고 내가 묵시록에 나오는 종말 이전에 죽는다면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천 년 동안의 다스림에 관한 내용은 특별히 나와 상관없는 내용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주교에서는 이 내용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고 개신교에서도 수많은 학설들만 내어놓지 수긍이 가는 내용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크게 세 주장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예수님의 재림 이전에 이 세상에 펼쳐질 평화의 시대이고, 두 번째는 예수님의 재림 이후에 펼쳐질 하느님 나라이며, 세 번째는 이도 저도 아니라 이미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천 년 왕국이 실현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럼 본문을 잠깐 훑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17-18장에 대탕녀 바빌론이 심판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대탕녀 바빌론은 세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는 19장에 하느님의 어린양과 교회를 상징하는 천상 예루살렘의 혼인잔치가 벌어집니다. 이것으로 주님의 심판이 완성된 것 같았는데, 이제 20장에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이름을 지니신 분이 피에 젖은 옷을 입으시고 흰 말을 타고 오셔서 옛날의 뱀이라 불리는 사탄을 꽁꽁 묶어서 지하로 던져버리십니다. 그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증언과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잘린 이들의 영혼이 첫 번째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을 다스리게 됩니다.

그런데 천 년이 끝났을 때는 사탄이 감옥에서 풀려나 자신들의 무리와 함께 모든 민족들을 끌어들여 성도들과 하느님의 도성을 에워싸고 전투를 벌입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사탄과 그의 졸개들은 모두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 이후에 모든 이들이 모두 부활하여 주님의 어좌 앞에 나서게 되는데 이것이 두 번째 심판입니다. 교리적으로는 공심판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저마다 자기 행실대로 심판 받게 됩니다. 물론 가장 보잘 것 없는 형제들에게 사랑을 실천하였지만 그것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본성적으로 선하게 살아온 이들이 구원 받게 됩니다. 그들의 이름은 이미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공심판 때는 사탄이나 그의 졸개들, 그리고 구원될 이들이 최종적으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심판 때의 판결이 바뀌는 일은 없습니다. 여전히 사탄과 그의 졸개들은 주님께 반항할 것이며 주님의 말씀 때문에 자신 안에 있는 뱀을 죽여 머리가 잘린 이들은 주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21장에 다시는 죽음도 고통도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가 완성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천 년 동안 주님의 말씀 때문에 자신의 목을 자른 순교자들이 다스리게 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다스린다는 말은 창세기 때부터 나오는 말입니다. 아담은 동물들을 다스려야 했습니다. 이름을 지어준다는 말과 같고 길들인다는 말과 같습니다. 길들인 짐승은 이름이 있고 그 짐승과 깊은 관계를 맺습니다. 다스린다는 말은 다른 말로 사랑의 관계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관계 안에서 행복한 세상이란 뜻입니다. 루카 복음 19장의 미나의 비유에서 미나를 더 번 착실한 종들은 그 미나를 번 고을 수만큼 다스리게 됩니다. 마치 노아가 자신의 배에 탄 짐승들을 다스린 것과 같이 일곱 재앙을 통해 구원된 이들이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방주 안에서 자신들이 길들인 이들과 친교를 나누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공심판까지 천 년을 기다려야 할까요? 이는 연옥을 생각하지 않으면 해석이 절대 불가합니다. 세상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멸망하더라도 연옥에서 그 벌을 받는 이들은 자신들의 기간이 다 차지 않으면 완전한 보속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 천 년이란 세상이 끝난 후에 그들 모두가 하나도 남김없이 천국에 오를 수 있는 수준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분명 황폐화 되어 있겠지만 지구는 존재할 것입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때는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그렇게 기다리는 기간이 천 년 왕국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 성경도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님이 오시면 바로 연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빨리 순교자가 되어야합니다. 주님의 뜻에 우리 목이 잘려나가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작은 사탄을 죽여야 합니다. 이것이 순교입니다. 그 순교자들 안에 들어서 그 시간 동안 연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즐길 수 있는 삶을 지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유일한 이유는 황폐화 되고 결국은 사라지게 될 이 세상에서 내 자신이 주님과 함께 천 년 왕국부터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참된 악으로부터의 순교자가 되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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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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